시읽는기쁨

들리는 소리 / 원재길

샌. 2013. 10. 1. 07:45

1

바로 아래층에서

전기 재봉틀 건물 들어 올리며

옷 짓는 소리

목공소 전기톱

통나무 써는 소리

카센터 자동으로

볼트 박는 소리

 

굉음에 하늘 돌아보니

불빛 번득이며

먹구름 밑 낮게 나는 헬리콥터

어서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시동 걸려

골목에 버티고 선 트럭

 

2

너는 모든 침묵을

소음의 자식이라 여겨라

모든 소음은

침묵의 아비로다

사람의 모든 색色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 애써라

 

너는 사람이며

색은 소리이다

너 자신도 색임을 이해하여

소리인 사람과 섞여 살아라

그 소리에 옷 얻어 입고

가구 받아 들이고

 

바쁜 날 천리마 얻어 타고

두 눈은 멀리 가는 빛 얻어 번쩍일 때

너는 언제까지나

너답게 살아라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사람으로 대접하라

 

- 들리는 소리 / 원재길

 

 

중학교 2학년 때 공부에 전념하라고 아버지가 읍내에 얻어준 방이 하필 목공소를 하는 집이었다. 공장이 집과 붙어 있었는데 밤낮 없이 전기톱 소리가 왱왱거렸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으니 그 와중에도 소음이라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면서 공부했다. 도리어 나무 내음, 나무 켜는 소리가 좋아 목공소에 가서 자주 놀았다. 직공들이 따뜻하게 대해줬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 같았으면 그런 환경에서는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아우성을 쳤을 것이다. 무엇이 소음인가? 처음부터 소음이란 건 없다는 게 맞는 말인지 모른다. 의식하면 소음이고, 의식하지 않으면 침묵이 된다. 소음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건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다. 나는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아이들 발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아내는 대범하다. 대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웃집 피아노 소리에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사람마다 약점 주파수가 다른 모양이다.

 

소음은 마음이 만드는 거라고 아무리 다잡아도 막상 소음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자다가 천둥소리에 잠을 깬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다. 그러나 위층 소음에 잠이 깨지면 화가 난다. 사람에게 방해를 받았다는 느낌에 더 열이 뻗치는 것이다. 어떠한 마인드 콘트롤도 소용없다. 결국, 인터폰으로 연락해서 죄송하고 미안해져서야 사태가 일단락된다.

 

소리를 피해 도망갈 데가 있을까? 산속에 사는 어떤 사람이 아침마다 고무줄 새총을 들고 마당에 나가는 걸 보았다. 집 부근으로 몰려오는 새소리가 시끄러워 못 살겠다는 것이었다. 너무 조용한 데 있으면 새소리도 소음으로 들리는 걸까? 또 한 사람은 조용한 명상처를 찾아 산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는데 인근에 기도원이 생기면서 쫓겨 내려왔다. "주여! 주여!" 피를 토하듯 부르짖는 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사람으로 대접하라!' - 시인의 이 말을 부적처럼 벽에 써 붙였다. 예, 그러겠습니다, 아무리 되뇌어도 그대만 찾아오면 모든 다짐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린다. 차라리 귀가 어두워지는 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 제일 빠른 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