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산국(2)

샌. 2013. 10. 25. 16:06

 

빈 들판에 노란 산국(山菊)이 핀다. 너도나도 잎을 떨구거나 누렇게 시들 때 늦게서야 꽃을 피우는 게 산국이다. 인고의 꽃이고, 인내의 꽃이다. 어떤 효험이 있음을 믿어서일까, 사람들은 노란 꽃을 꺾어 말려서 국화차를 마시거나, 베갯속에 넣어 긴 밤의 동반자로 삼고자 한다. 가을이 짙어가면 산들에는 산국 향기 그윽해진다. 시인이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라고 영탄한 바로 그 꽃이다.

 

 

들녘 비탈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빈들의 색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칠은 들녘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아름 고이 안고 돌아와

화병에 너를 옮겨놓고

거기서 맘대로 자라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지고

웃음 걷는 네 얼굴은 수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잎 두잎 병들어갔다

아침마다 병이 넘는 맑은 물도

들녘의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

너는 끝내 거칠은 들녘 정든 흙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은 이제

시들고 마른 너를 다시 안고

푸른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주려 나왔다

 

들국화야!

저기 늬 푸른 천정이 있다

여기 늬 푸근한 갈꽃 방석이 있다

 

- 들국화 / 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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