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래비티

샌. 2013. 11. 17. 10:36

 

우주를 무대로 한 영화 중에 이만큼 사실적이고 실감 나게 그린 작품도 없는 것 같다. 보는 영화가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다. 종래의 영화 인식을 바꿀 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포스터에 나오는 것처럼 외계인도, 우주전쟁도 없다. 내용은 단순하다. 우주정거장 사고와 그 이후의 귀환 과정에 대한 얘기다. 등장인물도 단 두 명이다.

 

궤도에서 보는 우주와 지구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화면에 몰입되면서 마치 내가 우주인이 된 듯하다. 그러나 고요하고 평화롭던 우주는 한순간에 공포로 변한다. 진짜 우주의 모습인지 모른다. 지구 품을 벗어난 곳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중력은 만물을 연결하는 힘이다. 중력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절대 고독의 외톨이다. 중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유지해 주는 근원적 요소로 상징되어 있다. 관계가 없으면 존재는 의미를 잃는다. 영화처럼 무중량 공간에서는 끈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끈은 재난의 현장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맷은 스톤과 연결된 끈을 스스로 끊음으로써 상대를 살린다. 끈을 초월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기도 하다.

 

홀로 남겨진 스톤은 지구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무중량 환경에서 눈물은 아래로 흐르지 않고 눈에서 떨어져 나와 공간을 떠다닌다. 관객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스톤의 눈물 한 방울에 가슴이 짠해졌다. 또 하나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맷과 스톤의 대화다. 맷이 묻는다. "우주에 와서 제일 좋은 게 뭐라고 생각해요?" 스톤이 단 한 마디로 답한다. "고요함이요."

 

눈을 감으면 내 몸이 붕 떠올라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다. 실제 우주인의 시각에서 촬영한 장면은 더욱 실감 났다. 'CGV 강변'에서 3D로 보았는데, 내가 본 SF 영화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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