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이상한 세상

샌. 2014. 1. 19. 10:18

서울에 갔다가 고층에 살고 있는 지인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던 참이었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멎고 문이 열렸는데도 한 여자 어린이가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얼굴은 잔뜩 찡그러져 있었다. 처음에는 왜 타지 않는지 영문을 몰랐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 채 "괜찮아, 타도 돼." 라고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남자가 있으니 무서워서 못 탄 것이었다. 나도 웃으며 "할아버지니까 괜찮아, 타."라고 말했다. 아이는 마지못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이는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이지만 막상 이런 상황을 만나니 속상하고 씁쓰레했다. 며칠 전 보도를 보면 한 할아버지가 공원에서 인사하는 여자아이의 손등에 뽀뽀했다가 천만 원이 넘는 벌금을 선고받았다. 몇 줄의 기사만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기는 무리지만, 이젠 이쁘다는 말도 조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언행이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성희롱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어린 남자아이 고추를 만지면서 맛있게 생겼다고, 따먹고 싶다고 하는 소리를 흔히 들었다. 그게 귀엽다는 표현이었다. 아마 요사이 그랬다가는 당장 고소를 당할 것이다. 이웃집 아이라도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을 수도 없다. 그런 걸 기분 좋게 받아들일 부모나 아이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워낙 성범죄가 많은 세상이다 보니 조심해야 할 것은 맞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다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날 보더니 엘리베이터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아이의 두려워하는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낯선 남자와 절대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부모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어린아이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게 하면 부모가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를 혼자 내보내며 사람을 조심하라고 시키기보다는 그런 말 없이 부모가 동행해 주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어린아이의 무의식에 사람이 공포의 대상으로 심어진다는 건 비극이다.

 

워낙 험한 시대이다 보니 이렇듯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을 만든 책임은 어른인 우리에게 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웃으며 뛰놀 무대를 우리가 빼앗아 버렸다. 20세기에 들면서부터 인간이 하는 행태를 보면 후손들에게 아예 디스토피아를 물려주려 작정한 듯하다.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보다 더 절망적인 건 도대체 미래의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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