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휴대폰을 끄다

샌. 2014. 2. 2. 09:05

휴대폰을 끈 지 20일이 되었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니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 말고는 집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되는 게 너무 쉽다. 현대의 은둔은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 버튼 하나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원래부터 휴대폰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아닌 구식 폴더폰을 쓰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자주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더구나 사람들과의 교류 폭도 좁으니 하루에 고작 전화 한두 통화나 가끔 문자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다. 오히려 조용해서 좋다. 울리는 벨 소리의 과반은 쓸데없는 데서 오는 거라 짜증만 일으켰다. 문자도 마찬가지였다. 필요한 건 열에 한둘이었다.

 

모임이나 지인들에게서 오는 연락을 못 받는 것은 각오하고 있다. 미리 얘기를 안 했으니 오래 통화 연결이 안 되면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할지 모른다. 당분간은 두문불출 잠수 생활을 해 보려 한다. 다만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를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까 봐 걱정이기는 하다. 요사이는 대부분의 연락을 휴대폰을 통해 받으니 조문이나 축하해야 할 자리에 참석 못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것은 다른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휴대폰을 없애려는 생각은 진작부터 있었는데 새해 들어 불현듯 실행하게 되었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 별나게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버릴 생각까지는 안 하고 있다. 짧게는 몇 달, 길면 일 년 정도는 휴대폰에서 벗어나는 실험을 해 보고 싶다. 익숙한 것과 잠시 결별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휴대폰을 끄고 느낀 점은 아주 가까운 사람의 전화번호마저 모르고 있었다는 자각이다. 심지어 아내나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단축키만 누르면 되니 안 그래도 숫자에 둔한데 기억될 리가 없었다. 얼마나 우리가 기계에 의존하는 삶을 사는지는 거기서 떠나볼 때만 실감할 수 있다. 뇌 기능을 기계에 맡기는 게 휴대폰만이 아닐 것이다.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들어오면서 지도를 찾는 수고는 사라졌지만, 공간 감각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기계 문명은 인간을 과거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어디를 가나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박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대개 TV 보기나 오락, 인터넷, 문자로 재잘거리는 정도다. 혼자 있어도 책을 읽거나 조용히 사색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현대인은 껍데기 인생을 사는 꼭두각시 같다. 내 생각이나 의지대로 사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얼마나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직접 느끼는 스마트폰 문화의 병폐 중 하나가 디지털 조급증과 수다스러움이다. 세상은 어딜 가나 디지털 소음으로 넘쳐난다.

 

잠시 세상의 어지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휴대폰을 껐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휴대폰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고,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확인해 나가고 있다. 덕분에 집 전화를 이용하니까 마치 20년 전쯤으로 돌아간 것처럼 신선하다. 기분도 그만큼 젊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