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제주도 4박5일 - 한라산 사라오름

샌. 2014. 6. 15. 10:03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다가 체력이 방전되어 포기하고 샛길로 찾아간 사라오름이다. 꿩 대신 닭이었다. 성판악 코스가 이렇게 돌투성이로 험한 길인 줄은 미처 몰랐다. 20년 전 한겨울에 이 길로 백록담에 올랐는데 그때는 눈으로 다져져 있어 평탄했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 성판악 코스를 너무 우습게 봤다.

 

9시에 성판악 탐방안내소를 출발하여 속밭 대피소, 사라악샘을 거쳐 진달래밭 대피소(1,500m)에 도착하니 오후 1시 가까이 되었다. 백록담 등정 제한 시간에는 겨우 맞추었으나 자신이 없었다. 흙길 4시간이었다면 무리가 되지 않았겠으나 돌길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구나 등산화가 아닌 트레킹화를 신어서 발바닥도 아팠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간단한 점심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들른 곳이 사라오름이다. 사라오름은 주 등산로에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 해발 1,324m나 되는 곳이다. 안내문에는 '신비의 산정호수'로 소개되고 있다. 이만한 고도에 호수로 된 오름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제주도 오름 가운데 최고도에 있는 오름이지 싶다.

 

 

분화구 면적은 5천 제곱미터인데 가물면 물이 말라 버린다. 물이 많이 고여 있을수록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낼 것 같다. 한라산에서 천 미터 이상 되면 수시로 비가 내리니 그나마 이만한 수량이 유지될 수 있다. 이날도 계속 흐렸다가 사라오름에 올랐을 때 반짝하고 날이 개었다.

 

사라오름을 보니 히말라야 고사인쿤드 트레킹을 했던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고사인쿤드는 해발 4,380m에 있는 호수로 네팔 사람들의 성지다. 우리가 갔을 때는 호수는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가끔 얼음 깨지는 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산중 호수는 무언가 신비롭고 특별한 데가 있다.

 

 

 

오름 둘레를 산책할 수 있도록 나무로 된 길이 만들어져 있다. 또한 전망대로 올라갈 수도 있다. 사라봉 전망대에서는 오름은 시야가 가려져 있지만, 백록담을 비롯하여 밑으로는 서귀포와 태평양이 내려다 보였다. 초록 수해(樹海)가 푸른 하늘, 흰 구름과 아름답게 어울렸다.

 

 

내려오는 길도 조심스러웠다. 성판악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었다. 사라오름에 외도한 1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성판악에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왕복하는 데 7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백록담까지도 넉넉히 갔다 올 만했다.

 

한라산에 오르면서 우리가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산행길 내내 추월당하기만 했다. 우리가 앞서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젊었을 때 같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정상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꼭대기에 대한 욕심은 없다.

 

한라산에는 성판악을 비롯해 돈내코, 영실, 어리목, 관음사 등 여러 개의 탐방로가 있다. 그중에서 백록담으로 연결되는 것은 성판악과 관음사 탐방로다. 백록담 정복이 목적이 아니라면 다른 등반로를 이용하는 게 훨씬 낫다. 성판악 코스는 전망에 대한 기대도 버려야 한다.

 

여덟 시간의 긴 등반을 마치고 1년여 만에 사우나를 했다. 귓속 염증 때문에 사우나를 삼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녁 시간이라 아내를 기다리며 밖에서 보낼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한 달만 때를 안 벗겨도 몸이 간지러웠는데 이젠 때를 무시할 수 있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서귀포 해수탕에서의 물 마사지만큼은 시원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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