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장 짧은 시 / 서정홍

샌. 2014. 6. 25. 08:34

아랫집 현동 할아버지는

몇 해째 중풍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를

혼자 돌보십니다.

 

밥도 떠먹여 드려야 하고,

똥오줌도 혼자 눌 수 없는 할머니를

힘들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으시고.....

 

요양원에 보내면

서로 편안할 텐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이웃들이 물으면,

딱 한 말씀 하십니다.

 

"누 보고 시집왔는데!"

 

- 가장 짧은 시 / 서정홍

 

 

고향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도 대부분 몸이 불편하시다. 중노동이 몸을 망가뜨린 것이다. 주변에 제일 많이 생기는 게 노인 요양원이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어쩔 수 없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요양원에 들어간다. 자식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부가 같이 사는 집은 어느 한쪽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끝까지 버텨내는 걸 본다. 이 시에 나오는 현동 할아버지도 그렇다. 시(詩)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시심(詩心)이 딴 데 있지 않다. 시인(詩人) 간판만 내건 어중이떠중이들보다는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더 시의 정수에 가깝다. "누 보고 시집왔는데!", 이 한 마디에 코끝이 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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