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 함민복

샌. 2014. 6. 1. 10:31

1

열차가 도착한 것 같아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스크린도어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망하여 별로 놀라지 않은 척 주위를 무마했다

스크린도어에, 옛날처럼 시 주련이 있었다

문 맞았다

 

2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위장을 눌러보고 갈빗대를 두드려보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옛 의술을 접고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 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

수평의 깊이를 넓히고 있었다

 

-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 함민복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아내와 휴대폰 얘기를 나누다가 결코 안 쓰겠다던 고집을 꺾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가게에 나가 싼 걸로 하나를 골랐다. 어찌 알았는지, 드디어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냐며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이제부터 스마트한 생활이 될지 모르겠다고 첫 카톡을 보냈다. 한 줄 완성하는 데 몇 분이 걸렸다.

 

사실 바꿔야 할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가족과 무제한 통화가 된다는 데 솔깃했고, 또 하나는 그까짓 통신비 몇 푼 하기에 구두쇠같이 사느냐는 핀잔 듣기도 싫었다. 돈은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대개 경제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새로운 기계에 호기심이 생길 법도 하건만 그다지 애착이 가지 않는다. 앞으로도 스마트폰에 익숙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기능들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주인을 잘못 만난 불쌍한 스마트폰은 혼자서 외롭다. 나는 기계에 관한 한은 보수를 넘어 수구꼴통에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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