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 이기철

샌. 2014. 5. 10. 08:05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그러면 풀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발이 간지러운 풀들이 반짝반짝

발바닥 들어올리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아픔처럼 꽃나무들 봉지 튀우는 소리 들릴 것입니다

햇살이 금가루로 쏟아질 때

열 마지기 논들에 흙이 물 빠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어디선가 또옥똑 물방울 듣는 소리

새들이 언 부리 나뭇가지에 비비는 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사는 게 무어냐고 묻는 사람 있거든

슬픔과 기쁨으로 하루를 짜는 일이라고

그러나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지레 슬퍼하지 말라고

산들이 저고리 동정 같은 꽃문 열 듯

동그란 웃음 하늘에 띄우며

봄 아침엔 화알짝 창문을 여세요

 

-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 이기철

 

 

잔인하고 우울한 계절이 계속되고 있다. 온 나라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어둡고 답답한 터널 속이다. 언제쯤 출구의 환한 빛을 볼 수 있을까, 캄캄함의 어디쯤 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화가 나고 슬프다. 그래도 너무 징징대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고치 속에 갇혀서 슬픔이 슬픔을 낳는 걸 지켜보기만 하다니, 애벌레의 꿈은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젠 창문을 열어도 될 때다. 화알짝 웃지는 못하겠지만 조심스레 바깥나들이 발걸음을 디뎌도 되겠다. "사는 게 무어냐고 묻는 사람 있거든, 슬픔과 기쁨으로 하루를 짜는 일이라고, 그러나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지레 슬퍼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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