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화학 선생님 / 정양

샌. 2014. 4. 25. 09:23

중간고사 화학 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O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 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제대로 채점하면 60점인데 기분 좋아서 100점"

그러시고는 다음 차례 점수를 매기셨다

모두들 선생님의 장난말인 줄로만 여겼는데

며칠 뒤에 나온 내 성적표에는 화학 과목이

정말로 100점으로 적혀

그 점수가 영 믿기지 않았지만

백발 성성한 지금도 이 세상에는

그른 일들이 옳은 일보다 많다는 걸

나는 믿지 않을 수가 없다

 

- 화학 선생님 / 정양

 

 

큰 비극 가운데서도 중고등학교는 지금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이 시를 보니 중학생이었을 때 농업 선생님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시험 정답이 전부 4번이 되도록 문제를 내셨다. 채점하기가 엄청나게 편하셨을 것이다. 학급에서는 100점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런데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설마 전부 4번이 답일까 싶어 여러 개를 4번 아닌 걸로 억지로 찾느라 낭패를 보았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한 녀석은 행운의 100점을 받기도 했다. 내 학창 시절의 경험으로는 꼴찌가 1등을 앞섰던 유일한 경우였다.

 

시에 나오는 화학 선생님도 대단하시다. 시험 문제를 전부 OX 문형으로 낸 것이나, 기분 좋다고 60점을 100점으로 둔갑시킨 것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화학 선생님의 멘트가 그 시절이 낭만 시대였음을 말해준다. 40년 전 학교 분위기가 실제로 그랬다. 이 정도의 자율권이라면 선생 할 맛이 났을 것 같다. 그런데 내신제가 도입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요사이 학교에서는 점수 1점만 잘못 매겨도 큰일이 난다. 교사는 문제를 낼 때부터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기 위해 별 코미디 같은 일이 다 벌어진다.

 

옛날을 회상해 보면 그때 감독 선생님들은 의자에 앉아 신문이나 잡지를 보며 따분한 시간을 때웠다. 감독이라기보다는 시험지를 배부하고 답안지를 거두는 역할이었다. 아이들도 적당히 커닝을 했지만 기쓰고 덤비지는 않았다. 문제를 다 풀었으면 답안지를 엎어 놓고 나가면 되었다.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붙잡고 있지 않았다. 그때도 경쟁으로 시달리는 건 비슷했지만 획일적인 통제 시스템은 아니었다. 아마 요사이 학교에서 교사가 저런 식으로 시험 문제를 냈다간 교단에서 배겨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교사나 학생이나 시스템에 갇혀 길들어 있다.

 

어수룩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사람 냄새 나고 낭만이 있었다. 교실에서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훈훈한 정이 오갔다. 지금 학교에서는 그런 걸 찾아보기 힘들다. 옳고 그른 걸 따지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면 얼음장 같은 세상이 된다. 교육 본래의 의미를 되찾자면 우선 학생을 숫자로 평가해야 한다는 마법에서 풀려나야 한다. 대안은 무엇일까? 교육 현장이 너무 망가져 버려서 차라리 내신 없던 시절이 더 나아 보인다. 밖에 나와 보니 내신이라는 제도가 교사나 학생을 너무 옭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하고 나서 제일 좋은 게 아이들의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놈의 수행평가는 또 어떠했는가? 교육을 위한 평가가 아니라 점수 내서 서열을 가리기 위한 짓거리가 아니었던가. 1점이 잘못됐다고 항의하러 오는 아이들에게 이젠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어느 누구도 삼라만상에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풀도 100점, 나무도 100점, 구름도 100점, 그리고 너도 100점, 나도 100점, 모두가 100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