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샌. 2014. 4. 4. 09:11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한 갑자가 돌아가도록 살아보니 세상일 내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겠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는 젊은 시절의 호기였을 뿐이었다. 긍정보다는 체념의 철학이 세상살이에는 더 어울린다. 단추 하나 채우거나 옷 한 벌 입기도 힘든데 인생살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잘못 채운 단추는 다시 맞추면 되지만 인생에서 실패는 물릴 수가 없다. 그나마 지혜로운 인간은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고 좀 더 성숙해진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어린아이는 걸음마를 배울 때 처음에는 뒤뚱거리지만 이내 숙달되어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길은 다르다. 숙달이나 완성이 없다. 죽을 때까지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한다. 생채기가 아물 날이 없는 게 인생이다. 인생에 대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 하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