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샌. 2014. 3. 13. 10:33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사람들 소식이 연이어 들린다. 보도에 나오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지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지병으로 일을 할 수 없어 생활비를 벌지 못하게 된 어머니는 두 딸과 함께 이승을 버렸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는 70만 원과 함께 이런 유서를 남겼다.

 

한 진보 운동가의 죽음도 슬프다. 그녀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보 정당에 들어갔다.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세상이 변할 것이라 믿었지만,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너무 느렸다. 진보 정치가 존재감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그녀는 더욱 절망에 빠졌다. 의원 하나 없는 정당의 당직자 보수로는 아들 하나 키우기도 힘들었다. 좌절과 우울이 그녀를 막다른 길로 내몬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다. 옛날 더 어려웠던 시절을 얘기하며 못 참을 게 뭐가 있느냐는 사람도 있으나, 그때는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었다. 따스한 이웃 사이의 정이 살아내는 힘이 되었다. 인간에게 물질적 가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소외와 외로움이다. 한 조각 위안조차 찾지 못했던 그분들의 고통과 번민이 얼마나 컸을까. 고단했던 지상에서의 삶을 잊고 저승에서는 안식하시길 기도 드린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극한에 몰린 사람에게, 기다리면 봄이 온다고, 그대 앞에 봄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사치인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겨울이 깊어도 봄은 찾아온다. 삭풍에 떨고 있는 그대에게도 이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삶은 살아내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는 희망 하나만은 놓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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