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동해바다 / 신경림

샌. 2014. 2. 27. 11:29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작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 동해바다 / 신경림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나이를 헛먹고 있다. 늙어가면서 제일 괴로운 게 옹졸해지는 나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를 만나니 안도현의 '바다가 푸른 이유'라는 글이 생각난다. 스스로 채찍을 들 줄 모른다면 하느님의 매라도 기다려야 마땅하다. 푸르고 성성하게 살아 있기 위해서는.....

 

 

아주 멀고 먼 옛날, 바다는 푸른빛을 띠지 않았다. 수천 길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했으며, 파도 한 점 없이 고요하였다. 마치 항아리 속에다 우물물을 길어다 둔 것 같았다.

 

바닷가에 가서 두 손을 받쳐 바닷물을 떠보라. 바닷물이 푸른색이 아니라 투명에 가까운 빛을 띠고 있는 것은 아주 멀고 먼 옛날 바다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게으르기 짝이 없었다. 수평선을 건너 먼 나라로 떠나고 싶은 모험심도 없었고, 갈매기나 가마우지처럼 열심히 일을 해서 먹이를 얻을 줄도 몰랐다. 하루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는 날이 늘어날수록 바다는 밑바닥부터 썩어가기 시작하였다. 조개와 새우와 물고기들이 썩어 물 위로 떠올랐다. 투명하던 바다는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점점 검게 변해갔다.

 

이것을 보고 있던 하느님이 마침내 바다를 혼내주려고 마음을 먹었다. 제 몸이 검게 변해가도 잠만 쿨쿨 자는 바다를 깨우는 길은 태풍을 보내 바다를 때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태풍은 지체없이 바다를 흔들었다. 태풍이 얼마나 바다를 세게 때렸던지 그만 바다는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고 말았다.

 

그때부터 바다는 푸른빛을 띠게 되었으며, 그 후로도 바다가 나태해지려고 할 때마다 하느님은 어김없이 바람과 빗방울을 보내 바다를 일깨우는 것이었다.

 

지금도 여름철이면 아이들이 발가벗고 바다로 들어가 헤엄을 치며 손으로 바다를 찰싹찰싹 때리는 것은, 바다를 잠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느님과 다름없는 아이들의 매를 맞고 오늘도 바다는 저렇게 푸르다.

 

- 바다가 푸른 이유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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