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샌. 2012. 5. 18. 10:18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진보 정당이 시끄럽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요사이가 꼭 그 꼴이다. '통합'의 간판을 내건 지 몇 달도 안 되었다. 너무 잘 난 사람이 많아서인가, 자신의 길만이 옳다는 독단에서 벗어나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가 보다. 믿음과 신념의 병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여론의 진보 때리기가 너무 하다는 생각도 든다. 네 이놈들 잘 만났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 욕하는 틈에 끼여 같이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그러나 온 세상이 '예스'할 때 '노'라고 할 수 있는 당신 같은 사람도 있다.

 

돌아보면 경솔한 짓 많았다. 이젠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한 인간의 변화와 성장에 대해 내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것도 만만치 않다.

 

고통과 아픔 속에 있는 당신에게 이 시를 보낸다. 너무 앓지 마라. 세상의 길은 둥글다.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말기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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