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목련에 대하여 / 박남철

샌. 2014. 12. 8. 12:08

1

국민학교 때 나는 학교 화장실 뒤의 콘크리트 정화조 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개 한마리를 보았었다.

 

지금도 나는 그 생각만 하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마 그 개는 그 정화조에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덥썩 잡아서 끌어올려야 하는 건데

 

그러나 개는 잡는 시늉만 해도 이빨부터 먼저 드러낸다 으르렁

 

2

나는 자본주의의 정화조에 빠진 한 마리의 개다.

 

- 목련에 대하여 / 박남철

 

 

어떤 상황을 말하려는 거지, 하며 무심코 읽어내려 가다가 시의 마지막 행에서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개는 결국 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구해주려는 손길에도 적대감을 드러내며 분노한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상식이나 고정관념, 또는 특정 이데올로기로 대치해도 마찬가지다. 이 시가 전하는 적나라한 메시지는 충격적이었고, 한동안 '똥통에 빠진 개'라는 이미지는 나를 사로잡았다.

 

박남철 시인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시가 떠올랐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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