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백석 평전

샌. 2015. 1. 18. 10:55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 평전이다. 안 시인이 제일 존경하는 백석의 생애가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시인의 감칠맛 나는 글솜씨가 백석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재구성했다. 특히 해방 이후 북한에서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백석이 남긴 작품을 중심으로 되살린 건 의미 있다. 책이 쉽게 재미있게 읽혀 좋다.

 

백석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부분적으로 알던 백석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조감하게 되었다. 결벽증이 있는 모던 보이 백석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전화기는 남 손이 닿았다고 손수건으로 싸서 잡고, 악수한 뒤에는 비누로 씻을 정도로 깔끔했다. 남이 만진 물건에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멋을 부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양복을 맞춰 입고, 비싼 양말을 사 신었다. 향토색 짙은 서정시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1936년, 25세에 시집 <사슴>이 100부 한정판으로 나왔다. 이때 조선일보에 사표를 내고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갔으니 백석 인생의 한 전기가 되었던 해다. 함흥에서 기생 김진향을 보고 첫눈에 반한 뒤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백석이 흠모했던 통영 처자 박경련은 다음 해에 친구와 결혼했다. 백석은 최정희, 노천명, 모윤숙과도 자주 어울렸지만 갈등도 있었다.

 

일제 말기가 되어 많은 문학인들이 변절할 때 백석은 만주로 피신했다. 창씨개명도 거부하고 일제에 협력하지 않은 점은 백석다운 결기였다. 백석은 해방이 될 때까지 붓을 꺾고 은둔하며 침묵했다. 만주에서는 문경옥과 1년 남짓 신혼살림을 차렸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못하고 이혼했다. 정식 결혼 생활은 젊은 백석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해방 이후에 평양에서 리윤희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안정된 생활을 했다.

 

<백석 평전>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가 어떤 배경에서 씌어졌는지 알게 되어 기뻤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몇 달 만에 서울에서 재회한 자야에게 준 시였다. 시에 나오는 나타샤는 응당 자야였을 것이다. '귀농'은 만주국 국무원의 말단직원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어볼 생각으로 백구둔 마을에 땅을 빌리러 갔을 때 이야기다.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도 같은 시기에 쓴 시다. 시를 이해하는 데 시인의 배경을 아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평양에서 동시를 쓰며 문학 활동을 하던 백석은 48세 되던1959년에 양강도 삼수군으로 내려가라는 명령을 받고 축산반에 배치되어 양 치는 일을 맡았다. 구속을 싫어하던 이상주의자 백석에게 딱딱한 김일성 유일체제는 체질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에는 순수문학에 대한 논쟁도 있었지만 곧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리고 51세 되던 1962년에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일절 창작활동을 못 하게 된다.

 

북한 체제에서 백석에게는 시가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시급했다. 북한에서 백석이 쓴 시를 보면 실망스럽지만 예술성을 망각했다고 비난할 수만 없다. 초기에는 아동문학 논쟁을 통해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주의를 주장했지만 결국 꺾일 수밖에 없었다.

 

백석은 1996년, 85세에 세상을 떴다. 평양에 한 번 다녀온 것 외에는 40년 가까이 삼수군 벽촌에서 살았다. 백석이라면 비밀리에 쓴 백석다운 시를 어디에 숨겨 놓았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사람은 그가 사는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유일사상은 사상의 자유를 통제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백석 같은 예술가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체제의 선전수가 된 사람은 입신출세를 했다. 백석의 일생은 우리 시대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0) 2015.01.30
국제시장  (0) 2015.01.23
관촌수필  (0) 2015.01.12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0) 2015.01.08
닥터 지바고  (0)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