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샌. 2015. 1. 30. 11:07

학교에 다닐 때는 적성이 맞지 않아 고민했지만 지금은 물리학을 전공한 게 고맙다. 일반인들이라면 과학 이론에 흥미를 느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용이 딱딱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객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물리는 우주와 인생에 대한 근본 질문과 깊숙이 관계되어 있다. 특히 양자론 같은 현대물리학이 그렇다.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그나마 들은풍월이라도 있으니 과학 서적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포드(K. W. Ford)가 쓴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는 원제가 <Quantum Physics for Everyone>이지만 일반인이 읽기에는 쉽지 않다. 아무리 쉽게 써도 양자론은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 양자론 자체가 너무나 기묘하고 이상한 세계를 그려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근본이 불확실하고 확률적이라는 개념은 견고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우리의 보통 상식을 깨뜨린다. 명석한 물리학자였던 리처드 파인먼 조차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양자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아원자 입자를 중심으로 양자 세계를 묘사해 나간다. 책의 2/3 정도가 렙톤, 쿼크, 바리온, 메존, 힘 매개 입자들의 설명에 할애되고 있다. 다른 책에 비해 비중이 큰 편이다. 표준모형을 중심으로 한 입자를 통해 우리 세계를 이루는 물질의 근본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이런 작은 입자들에서 양자적 특징이 드러난다. 양자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양자 세계는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 입자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법칙들, 입자와 파동 이중성, 두 입자가 서로 얽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해석 등이 설명된다. 훌륭한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 장이 '한계를 넘어서'인데 양자 물리학의 미래를 예견하는 내용이다. 지은이는 "과학자와 공학자는 양자 세계를 활용하게 될까?" "아원자 하위 세계에서 새로운 지식이 생겨날까?" "양자 이론의 이유가 밝혀질까?"라는 질문 세 가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 무엇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면 인류는 기술과 지성의 한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원으로서 물질과 반물질의 상호작용을 이용할 수 있다면, 같은 양으로 우라늄 핵분열의 1,000배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더구나 방사능 폐기물 걱정이 없는 에너지다. 그러나 지은이는 영원히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자론은 원자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그래도 뭔가 미진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임시방편일 뿐 최종적인 이론은 따로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은이도 자신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어도 양자론이 무엇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기이하고 놀랍다는 사실만은 말할 수 있겠다.

 

유령 같은 물리량을 다루고, 확률이 근본적인 개념이며, 양자 영역과 인간의 인지 영역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양자론에 대해 많은 물리학자들이 불편해한다는 건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이 도래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 무엇'이 열매를 맺을 때 인간의 지적 능력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진입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주와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이 무엇이 될지도, 어떻게 달라질지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현재는 늘 가슴 설레는 과도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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