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 가네코 미스즈

샌. 2015. 2. 7. 10:23

내가 양팔을 활짝 펼쳐도

하늘을 조금도 날 수 없지만

날으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 위를 빨리는 달릴 수 없어

 

내가 몸을 흔들어도

고운 소리 나지 않지만

저 우는 방울은 나처럼

많은 노래 알지는 못해

 

방울과 작은 새와 그리고 나

모두 달라서, 모두가 좋아

 

-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 가네코 미스즈

 

 

가네코 미스즈(1903~1930)은 일본의 동요 시인이다. 27세로 요절한 그녀의 생애는 난설헌을 연상시킨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남편은 가네코의 작품 활동과 편지 왕래까지 금지시켰다. 결국 이혼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딸을 데려가려고 하자 수면제를 먹고 생을 마감했다. 남동생이 보관하던 유고집이 발견되어 그녀의 시가 세상에 드러났다.

 

작고 여린 것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가네코의 시는 순수한 동심으로 가득하다. 사물을 대하는 감성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라는 시집이 출판되어 있다. 그 책에서 몇 편을 골라 보았다. 

 

 

아침놀 붉은 놀

풍어다

참정어리

풍어다

 

항구는 축제로

들떠 있지만

바닷속에서는

몇만 마리

정어리의 장례식

열리고 있겠지

 

- 풍어

 

 

툭툭

얻어맞는 흙은

좋은 밭이 되어

좋은 보리를 낳지요

 

아침부터 밤까지

밟히는 흙은

좋은 길 되어

자동차를 지나가게 하지요

 

얻어맞지 않는 흙은

밟히지 않는 흙은

필요 없는 흙일까

 

아니 아니, 그것은

이름 없는 풀의

집이 되지요

 

- 흙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냥 둡시다

 

아침 뜨락 한구석에서

꽃님이 글썽글썽 눈물 흘린 일

 

혹시라도 소문이 돌아

벌님 귀에 들어간다면

 

잘못이라도 한 줄 알고

꿀을 돌려주러 가겠지요

 

- 이슬

 

 

어제는 어린애를

넘어뜨리고

오늘은 말의

발을 걸었다

내일은 누가

지나갈까나

 

시골 길바닥

돌멩이는

빨간 저녁 해에

태연스럽다

 

- 돌멩이

 

 

어린애가

새끼 참새를

붙잡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

웃고 있었다

 

참새의

어머니

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그걸 보고 있었다

 

- 참새의 어머니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은빛으로 빛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파란 뽕나무 잎새를 먹고 있는

누에가 하얗게 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아무도 손대지 않는 박꽃이

혼자서 활짝 펴나는 것이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누구에게 물어봐도 웃으면서

당연하지, 라고 말하는 것이

 

- 이상함

 

 

이슬의 초원

맨발로 가면

발이 푸릇푸릇 물들 거야

풀향기도 옮아올 거야

 

풀이 될 때까지

걸어서 가면

내 얼굴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어날 거야

 

-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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