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우리가 남이가

샌. 2015. 3. 9. 09:59

우리 민족은 정이 많다고 한다. 따스한 인정은 조상이 물려준 훌륭한 유산이다. 내 어릴 때만 보아도 집에 찾아온 객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식사할 때라면 밥을 함께 나누어 먹었고,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곡식 한 줌이라도 꼭 주어서 보냈다. 가난했지만 나누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신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물이 들면서 이런 공동체 의식은 폐쇄적으로 변했다.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만 주고받기로 바뀌었다. 울타리 밖은 남이며 경쟁 대상으로 배척된다. 패거리 문화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끼리끼리 똘똘 뭉치고 집단의 목표에 개인은 매몰된다.

 

이런 집단은 가족을 내세우는 게 특징이다. "우리가 남이가"도 같은 부류다. 직장에 다니던 어느 해 옆 반의 급훈이 '우리는 한 가족'이었다. 그것이 평등 관계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식은 부모 말을 잘 따라야 한다는 식의 가부장적 권위를 그 반 담임은 실천했다. 급훈은 그럴 듯했지만 사실은 콩가루 집안이었다.

 

동류의식을 가지게 되는 제일 작은 단위가 혈연으로 연결된 가정이다. 가정은 빛과 그늘을 함께 가지고 있다. 현대에 들면서 가정의 부정적인 면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가족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지나친 간섭을 한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새끼만 챙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우리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사원을 가족으로 대한다는 회사일수록 실상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잘 된다면 굳이 가족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 지침과 어긋난 생각이나 행동을 하면 가족끼리 왜 그러냐고 반문할 게 뻔하다. 관리자가 편하도록 하나로 통일된 모습을 유도할 때 가족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겉으로는 굉장히 인정 있고 따스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지연과 학연에도 얽매여 있다. 동향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니는 경상도 사람 아니가?"라는 힐난을 받는다. 경상도 출신이 어떻게 그런 삐딱한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그런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만나면 신난다. 다른 쪽은 경계하고 배척한다. 학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精)과 연(緣)을 강조하게 되면 폐쇄적이고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서양의 합리적인 사회에서는 우리처럼 심하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병리 현상 중 상당 부분이 이런 소집단의 우리라는 하나 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어느 집단이나 실제 목적은 이(利)다. 이익으로 뭉쳐있기에 타 집단에 적대적이고 끼리끼리를 강조한다.

 

가족주의, 지역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모두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는 좀 더 개인적이 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어디 소속으로 특정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각 개인의 독립적인 주체성에서 나온다. 건강한 공동체는 하나하나의 개인을 존중한다. 우리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앞으로 우리의 살 길은 개인주의의 확대에 있다.

 

개인주의는 이기(利己)가 아니라 집단주의의 폐해를 막는 보루다. 우리는 남이다. 심지어 가족도 마찬가지다. 핏줄의 인연으로 만났을 뿐 엄연한 남이다. 야박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하물며 다른 인연이야 어떻겠는가. 이런 튼튼한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공동체라야 건강하다. 그래야 타자를 배려하면서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이 소중한 줄 아는 사람이 남 역시 소중한 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

그렇다. 우리는 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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