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사람 꼴

샌. 2015. 3. 29. 08:55

늙어가니 마음이 더 옹졸해진다. 나이를 먹으면 원숙해지고 관대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나를 돌아보면 증명이 된다. 마음 꼬라지 하고는, 라며 혀를 찰 일이 잦다.

 

그중의 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일도 눈을 찌푸리게 된다. 사람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데, 라는 그물망이 더 촘촘해졌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휴대폰으로 통화하거나 소음을 내는 사람이 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런 소음이 들리면 무척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한마디 한다. 최근에 그런 경우가 두 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적을 하고는 바로 후회를 한다. 떨떠름해 하는 상대방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표정이다. 재수 없이 까다로운 노인네를 만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사람이 앞으로 행동을 바꿀 것 같지 않다. 괜히 내 성질만 부린 꼴이 된다. 내 행위가 옳았다면 뒤끝도 좋아야 한다.

 

며칠 전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에서였다. 러닝머신을 타는데 옆의 아줌마에 너무 신경이 쓰였다.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연신 꺄르르 웃어대는 것이었다. 마치 자기 집 거실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조용히 해 달라고 한마디 했다. 아줌마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조용해지기는 했다.

 

우리 사회는 이웃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 나만 편하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 살펴볼 때 내가 짜증을 내는 건 사람 꼴을 봐주지 못하는 탓도 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바꿔야 할 것은 남이 아니라 우선 나 자신이다.

 

반응을 하고 나면 늘 자책한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말 한마디로 바뀌지 않는다. 함께 어울려 살자면 참을 건 참고, 양보할 건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늙을수록 왜 잘 안 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작아 보이는 건 세상을 살면서 이런 사소한 일에 자주 화를 낸다는 것이다. 큰 불의에는 눈과 귀를 막으면서 자잘한 것에만 마음을 뺏기고 있는 게 슬프다. 특히 가족 사이에 그런 일이 많다. 애처롭고 안타까워해야 할 연민의 대상에게 화살이 날아간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자. 못 번 척 못 들은 척 무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 옳다는 지적질이 많은 경우 내 편협함에서 나온다. 나잇값을 못하는 게 인생의 비극이다. 다른 사람 꼴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꼴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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