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낯설다

샌. 2015. 5. 10. 11:06

여행을 다녀오면 일상이 낯설어진다. 기간이 길고 혼자 떠난 여행일수록 그렇다. 익숙한 사물과 사람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고리타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신선한 바람이 필요하다.

 

좋은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책을 읽는가? 독서는 관습과 타성에 젖은 뇌를 깨어나게 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의미에서 독서는 여행과 닮았다. 고만고만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키워드를 둘은 내장하고 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내면의 보물찾기라 할 수 있다.

 

이번에 폐렴으로 입원해 있으면서 질병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걸 발견했다. 아픈 경험 역시 세상을 낯설게 만든다. 병은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독서나 여행보다 더 절실하다.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하찮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였던 것들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준다. 타자에 대한 가치가 뒤집히는 경험을 한다. 반짝이는 햇빛에서도 생의 덧없음이 선연하게 드러난다.

 

병을 일부러 맞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병원 신세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생로병사는 인간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병과 죽음이 주는 의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병은 일차적으로 내 생활을 반성하게 만든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병은 잘못된 사고와 습관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아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건 옳은 말이다. 성숙이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데서 출발한다. 배우는 사람에게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다 공부거리가 된다. 그러나 나태해지면 고루한 일상에 매몰된다. 삶이 평안하기만 할 때 빠지는 위험이다. 미숙한 인간은 고통을 통해 쇼크를 받고 성장해 나간다. 이때가 되어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묻는다.

 

세상을 낯설게 느끼게 되는 경험은 소중하다. 알 속에만 갇혀 있어서는 익숙함만 있을 뿐이다. 낯설기를 통해서 인간은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여행과 독서가 세상을 낯설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질병이 있다. 질병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시에 찾아와 나를 당혹케 하고 낯설게 한다. 못 보던 것을 보게 해주고, 세상이 뒤바뀌는 체험을 시킨다. 한창 아플 때는 낑낑대느라 정신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불청객 스승이기도 하다. 좋은 게 좋은 것만도 아니고, 나쁜 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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