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1Q84

샌. 2015. 9. 7. 12:13

1, 2권은 전에 읽었는데 한참 사이를 두고 이번에 3권을 마저 읽었다. 1권을 읽을 때의 긴장감은 덜했지만 하루키의 필력에는 여전히 감탄했다. 하루키는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위장에 문제가 있는 물리교사' 같은 표현에는 무릎을 쳤다. 워낙 문장을 만드는 재주가 있어 보여선지 내용이 받쳐주지 못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1Q84>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이다. 전체 분량이 2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데도 지루하지는 않다. 그러나 다 읽고 났는데도 선명하게 남는 건 없다. 이건 뭐지, 라는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작가의 속생각을 따라가지 못하겠다.

 

가볍게 생각하면 이렇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1Q84 세계를 산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이나 계기로 새로운 눈이 떠지고 이후의 세계는 전과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 하늘에 달이 두 개만 떠 있지 않을 뿐 다른 세계다. 아오마메는 고가도로에서 내려가는 사다리를 통해 그 세계로 들어갔다. 그런 통로는 등 떠밀리듯 우리를 찾아온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 <1Q84>가 그리는 세계는 낯설지 않다. 환상과 신비는 모든 세계의 특징이다. 미세하게 감추어진 까닭에 우리는 세계의 본질을 체감하지 못한다. 서로 얽혀 있는 입자들의 세계를 현실로 옮기면 이 소설과 비슷할지 모른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우리는 인연이라 부른다. 하루키는 <1Q84>를 통해 동화 같은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건 아니었을까.

 

소설에서 아오마메와 덴고는 1Q84에서 1984의 세계로 건너왔다. 그러나 두 세계는 분리되어 있다기보다 겹쳐있다는 것이 바른 표현일지 모른다. 간절함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을까? "간절히 바라는 것, 그것이 '리얼'을 만든다"라는 뒤표지에 적힌 문구가 이 책의 메시지를 전해주는지 모른다.

 

공기 번데기, 리틀 피플, 고양이 나라, 아오마메의 초월적 임신 등이 이 소설을 신비하게 만들지만 또한 독해를 어렵게 한다. 모호한 부분이 너무 많다. 내 취향이 아니어서인지 높은 점수를 주지는 못하겠다. 독자 입장에서는 불친절한 소설이다. 다만, 내 초등학교 시절의 H를 생각나게 만든 점, 그리고 앞으로 달을 볼 때 옆에 초록색 달이 하나 더 있는지 확인할 것 같은 점은 <1Q84>를 읽은 소득일 것이다.

 

이야기 전개로 봐서 <1Q84>는 4권이 나오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1984로 돌아온 두 사람의 이야기도 흥미롭겠다. 그러면 1Q84 세계의 색깔이 드러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굳이 4권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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