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덴마크 사람들처럼

샌. 2015. 11. 1. 17:02

전 세계에는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 정치 체제나 경제 수준이 각양각색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공자의 '대동사회'는 꿈이었을 뿐 한 번도 실현된 경우는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의 모델이 될 만한 국가는 없을까? 스웨덴,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가 우선 떠오른다. 여기엔 덴마크도 포함된다. <덴마크 사람들처럼>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나라, 덴마크를 소개하는 책이다. 행복의 비결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은이가 말해준다.

 

병원비가 공짜인 나라

대학 등록금도 공짜인 나라

대학생에게 매달 생활비 120만 원을 주는 나라

실직자에게 2년 동안 월급 90%를 주는 나라....

 

우리는 복지라는 말을 꺼내면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를 친다. 그러나 덴마크처럼 엄청난 복지를 시행하는 나라도 있다. 국민 행복도 조사에서는 항상 선두권을 유지한다. 국가의 지향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수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시민 의식이 무척 부러웠다.

 

지은이는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를 열 가지로 정리한다.

 

1. 신뢰 - 덴마크는 세계에서 신뢰가 가장 높은 나라다

 

덴마크 사람들의 78%가 이웃을 신뢰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정부나 행정 기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덴마크는 핀란드, 뉴질랜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부패 수준이 가장 낮다. 이러니 세금을 많이 내도 정당한 곳에 쓰일 줄 믿는다. 참고로 이웃 신뢰지수의 세계 평균은 2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얼마가 나올까? 모르긴 해도 한자리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 어제 보도로는 종교에 대한 신뢰를 물었는데 고작 12%가 나왔다.

 

2. 교육 - 덴마크는 몇몇 엘리트에 맞춰 교육하지 않는다.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 수준에 맞춘다

 

덴마크의 특별한 교육 제도에 '에프터스콜레'와 '호이스콜레'가 있다. 에프터스콜레는 일종의 인생 설계 학교로 덴마크 청소년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곳에서 1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이 아닌 다른 분야의 재능을 개발하면서 보내는 성숙의 해다. 에프터스콜레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공동체 의식, 창의성, 신체 활동, 기술 습득 및 단체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곳을 거치고 나면 학생들 대부분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길을 찾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다. 호이스콜레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주요 목표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호기심이 이끄는대로 수업을 받는다.

 

3. 자유와 자율성 - 덴마크 사람 중 약 70%가 열여덟 살이 되면 자기 방식대로 살기 위해서 부모 곁을 떠난다

 

덴마크에서는 열세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의 청소년 중 70%가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열일곱 살 이상은 80%가 넘는다. 그만큼 독립적이고 부모에게서 자유롭다. 지은이는 열여덟 살부터 어머니에게 방세를 냈다고 한다. 스물다섯 살이 넘는 덴마크 젊은이들 98%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4. 기회 균등 - 개천에서 났어도 꿈을 이룰 수 있다

 

5. 현실적인 기대 - 최고가 아니어도 만족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단순한 삶을 좋아한다. 물욕도 권력욕도 없다. 만족감의 주된 원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기대감이다.

 

6. 공동체 의식 - 네가 잘 지내야 나도 잘 지낼 수 있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세금을 기꺼이 내며 복지 국가에 대한 애착이 크다. 모두가 나눔에 함께 참여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덴마크의 세금 부담률은 48.1%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소득세는 60%, 자동차세가 170%, 부가가치세는 25%나 된다. 그래도 세금에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12%는 세금을 충분히 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7. 가정과 일의 균형 - 덴마크 사람들은 가정과 여가 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

 

덴마크에서 혼잡한 시간대는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다. 퇴근한 사람들이 거리로 우르르 나와서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여가 활동을 즐기러 간다. 오후 6시가 되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저녁 식사를 한다. 덴마크 사람은 '휘게'(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사랑한다.

 

8. 돈에 초연한 태도 - 지갑을 채우기보다 자신의 길을 찾는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부분 돈에 초연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 살지 않는다. 돈보다 열정을 좇는다. 백만장자가 되기에 덴마크는 적당한 나라가 아니다.

 

9. 겸손 - 내가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이 정신 덕분에 덴마크 사람들은 기분 좋게 절제할 수 있다. 덴마크 사람의 정신을 나타내는 '얀테의 법칙'이 있다.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넌 남보다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네가 무엇이든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마라. 누가 너에게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들지 마라."

 

10. 남녀 평등 - 덴마크 사람들은 고정관념이나 금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역할을 자유롭게 선택한다

 

덴마크의 남녀 평등을 나타내는 통계가 있다. 2011년 실시한 의회 선거에서 선출된 179명 중 39%가 여성이었다. 내각 구성원 중에도 여성이 39%다. 경제계에서도 여성이 이사회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친구가 남편과 함께 시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전 남자친구와 마주쳤다고 한다. 그때 상황을 전한 친구가 말하길, "왠지 남편 앞이라 약간 당황스럽더라고. 그래서 난 전 남자친구를 그저 하룻밤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어." 지은이의 직접 경험도 있다. 한 청년과 저녁 식사를 하고 청년은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청년은 도착하자 휘발유 값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돈을 지불했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고마워. 그런데 사실은 조금 부족해. 하지만 이번 비용은 내가 선물하는 셈 칠게!"

  

지은이는 성인이 된 뒤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프랑스가 아름다운 나라이긴 하지만 덴마크와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최고가 되기를 원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더 의존적이다. 사람들은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권세를 꿈꾼다. 무엇보다 겸손이 중요한 자질로 여겨지지 않는데 놀랐다고 한다. 세금, 가정과 일의 균형, 남녀 관계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프랑스가 이러할진대 만약 지은이가 한국 사회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해진다.

 

책을 읽으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덴마크의 국민 의식이 부러웠다. 우리도 통일만 얘기할 게 아니라 통일 국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통일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 좋은 기회다. 지금 한국 정치에는 이런 거대 담론이 없다.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 돌풍이 불고 있다고 들었다. 공립대 무상교육, 부자 증세 등 샌더스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이 북유럽 복지국가와 닮았다.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이길 가능성은 적지만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 같아 기대된다.

 

덴마크가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덴마크는 덴마크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 자살률도 높고 항우울제 복용량도 많다. 시스템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생은 끊임없이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기뻐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장기적으로 개인의 행복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내면의 토대다. 좋은 내면의 토대는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도 주관적 안녕감을 느끼게 한다. 덴마크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낼 줄 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자연스럽게 건강한 시민이 길러진다.

 

행복한 나라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제도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공동체의 행복은 좋은 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책 끝에는 지은이가 말하는 행복 십계명이 나와 있다.

 

행복 1계명, 나는 나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다.

 

행복 2계명,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행복 3계명, 나는 사회적 규범과 압력을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 4계명, 나에게는 항상 플랜 B가 있다.

 

행복 5계명, 내 전투는 내가 선택한다.

 

행복 6계명, 나는 나 자신에게 정직하다. 그리고 진실을 인정한다.

 

행복 7계명, 나는 현실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한다.

 

행복 8계명, 나는 현재를 살고 있다.

 

행복 9계명, 내 행복의 근원은 여러 군데다.

 

행복 10계명,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탄생  (0) 2015.11.11
서민적 글쓰기  (0) 2015.11.05
마션  (0) 2015.10.25
식물의 인문학  (0) 2015.10.21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0) 20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