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식물의 인문학

샌. 2015. 10. 21. 12:25

지은이인 박중환 씨의 경력을 보면 50세까지 언론계에서 일하다 늦게야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IMF로 직장을 잃은 게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식물을 공부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숲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식물의 인문학>은 그런 지은이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다.

 

책은 꽃, 잎, 열매, 뿌리의 네 단원으로 되어 있다. 물론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고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계절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는 설명은 재미있다. '스트레스 개화 이론'이다. 고사 위기에 있는 소나무일수록 작은 솔방울이 많이 맺히는 걸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식물이 지구의 산소 공장이란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지구 대기의 산소농도는 21%다. 바닷속 플랑크톤과 조류가 75%, 육상식물이 나머지 25%를 보충해준다. 그런데 대도시의 산소농도는 19% 이하로 떨어지기도 해 건강에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지하상가, 좁은 사무실 등 저산소 환경은 만성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산속 숲에 들 때 기분이 상쾌해지는 건 산소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외설악과 동해안은 21.6%가 나온다. 적정 최고 산소농도인 23%에서는 하루에 세 시간만 자도 피로를 느끼지 않고, 술을 과음해도 숙취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에서 술 마신 다음날 깨끗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맑은 공기, 구체적으로 산소농도 탓이다.

 

식물에서 배우는 지혜로 교육에 관한 내용이 흥미를 끈다. 우리는 지금 자녀를 온실 속 농작물로 기르고 있다. 인간을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르거나 키운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자란' 식물과 '키운' 식물을 비교해 보면 답은 명확하다. 온실에서 키운 농작물은 스스로 살아갈 생존력을 잃은 규격 식물일 뿐이다. 대한민국 학교는 온실 농장과 다를 바 없다. 지은이의 파격적인 대안은 이렇다.

 

초, 중, 고로 나누어진 12년 학제 대신 12년 단일 학제(6~17세)의 시골 기숙학교를 만든다. 연중 6개월은 시골 기숙학교에서 생활하고, 나머지 6개월은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자율 학습 시설에서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선택하여 체험한다. 시골 기숙학교는 어릴 때부터 자립심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 매우 효율적이다. 졸업 후 2년(18~19세)은 성년을 준비하는 휴식년이다. 모든 학비와 기숙 비용은 국가가 지원한다.

 

현재 2만여 곳에 이르는 초, 중, 고교는 지역의 중심지나 주택가 요지에 위치해 땅값이 만만치 않다. 이들 학교의 2/3만 매각해도 시골학교 건립 자금과 운영기금까지 마련할 수 있다. 학기를 6개월로 하면 2부제로 운영할 수 있고, 학교 수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매각하지 않은 나머지 1/3의 학교는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여 방학 중 자율학습과 휴식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방안은 출산율 저하에 학교 폭력, 입시 지옥, 과외 열풍, 그리고 가계 부담까지 대한민국 교육이 안고 있는 모든 난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또 노령화의 수렁에 빠진 농어촌에 청소년의 유입으로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이런 상상, 어떠한가?

 

책에는 지구 환경에 대한 내용도 많이 나온다. 특히 지구 온난화에 따른 사막화 현상을 많이 다루고 있다. 온실가스의 위험이 과대 포장된 점도 지적한다. 이산화탄소 규제로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소하다는 것이다. 지구 위기를 다룰 때는 정치적 계산 이전에 냉철한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식물 세계에도 치열한 생존 경쟁이 있다. 그러나 동물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상생의 미덕과 공존의 조화가 있다. 식물은 경쟁하지만 다투지 않고 타협하고 상생하며 공존한다. 숲만큼 완벽한 생태계는 지구상에 없다. 인류가 새로운 5천 년 문명사를 쓰려면 식물에서 배워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살길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덴마크 사람들처럼  (0) 2015.11.01
마션  (0) 2015.10.25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0) 2015.10.11
시골 똥 서울 똥  (0) 2015.10.06
시골은 그런 곳이 아니다  (0) 201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