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할아버지도 필요해

샌. 2016. 1. 21. 10:24

여자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손주 보기다. 아내는 몸이 아프다 하면서도 손주만 옆에 있으면 생기가 살아난다. 울고 보채도 불평 없이 다 받아준다. 손주가 귀여운 건 마찬가지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두세 시간이 한계로 그 뒤부터는 손주라도 귀찮아진다. 빨리 가라고 눈짓을 하는 때가 잦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는 걸 보니 누구나 비슷한가 보다.

 

아내가 줄기차게 손주를 봐주려는 건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요사이 젊은이들은 제 새끼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어한다고 혀를 차면서도 무엇이든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다. 딸이 먹을 반찬을 준비하는 것도 일 중 하나다. 남자라면 도저히 그렇게 챙기지 못한다. 제 자식을 향한 여자의 본성은 감탄스러운 데가 있다.

 

귀여워는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는 게 손주를 대하는 내 태도다. 무작정 예뻐하는 엄마나 외할머니와는 다르다. 집안에 무서운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육아관이 내 무의식에는 있는 것 같다. 그런 게 행동으로 배어나오는지 이제 철이 들어가는 외손녀는 나를 어려워한다. 짓궂은 장난이 아이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

 

손주를 보는 데 나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내 방에 들어가 혼자 있는 게 낫다. 그런데 가끔 할아버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외손녀가 밥을 안 먹으려 하거나 옷을 안 입으려 할 때 아내는 나를 부른다. 외손녀 앞에 있는 것만으로 아이는 고분고분해진다. 몇 마디 칭찬이라도 해 주면 순간에 말 잘 듣는 아이로 변한다. 외손녀와 전쟁을 치르다 안 되면 아내는 SOS를 보낸다. 평화의 십자군의 활약이 필요해지는, 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때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손주와도 주고받는 관계다. 어쩌면 받는 게 더 큰지도 모른다. 손주와 놀 때는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몸도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즐겁게 운동을 하는 시간이다. 10분 웃는 것만으로 50kcal의 열량이 소비된다고 한다. 엔드로핀은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삶의 활력이 손주에게서 나온다. 물론 긴 시간을 넘지 않을 때다. 그런데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 준 값을 계산하라고 하면 나는 할 말이 없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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