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죽는 게 뭐라고

샌. 2016. 2. 2. 20:14

죽음을 앞두고 어쩌면 이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초연한 삶의 자세가 경이롭다. "나는 처음에 암에 걸렸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암 선고를 받고도 태연자약했다. 암은 좋은 병이라며, 자신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의 목숨이 우주보다도 귀하다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죽는 게 뭐라고>는 일본 작가인 사노 요코(佐野洋子) 씨가 암과 동행하며 쓴 에세이집이다. 지은이는 유방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2010년, 72세에 세상을 떠났다. 책의 원제목은 <죽을 의욕 가득히>다.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기에 죽음도 미련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모른다. 사랑을 모조리 쏟아부었다면 오히려 생과 사에 초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산 사람만이 잘 죽을 권리를 가진다. 목숨에 집착하는 걸 생명의 본성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자. 인간 아닌 다른 동물은 죽음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면글면하지 않는다.

 

사노 요코 씨는 암에 걸렸지만 좋아하는 담배도 끊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다 하며 살았다. 일이 년 더 사는 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병으로 고통스러운 것을 힘들어하는 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죽음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두렵다. 현대 의료가 단순한 생명 연장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 완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품위 있는 죽음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죽음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사생관은 나도 본받고 싶다. 지은이는 당당하게 말한다.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모두 사이좋게 기운차게 죽읍시다!" 어느 글 중 한 대목이다.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

일흔은 죽기에 딱 적당한 나이다.

미련 따윈 없다. 일을 싫어하니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당연히 없다. 어린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을 때 괴롭지 않도록 호스피스도 예약해 두었다.

집 안이 난장판인 것은 알아서 처리해주면 좋겠다.

저세상을 믿진 않지만, 만약 저세상이 있어서 아버지를 만난다 해도 지금의 나는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나 많으니 정말로 곤란하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가난으로부터 배웠다.

부자는 돈을 자랑하지만, 가난뱅이는 가난을 자랑한다.

모두들 자랑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아버지의 저녁 설교 중 이런 말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정(情)'이었겠지.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는 게 뭐라고  (0) 2016.02.17
디 마이너스  (0) 2016.02.10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0) 2016.01.27
유스  (0) 2016.01.22
나의 한국현대사  (0) 201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