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미국은 싫어

샌. 2016. 2. 20. 12:31

옛날에는 커피와 설탕, 크림이 따로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각자 적당한 비율로 타 마시면 되었다. 내 입맛에는 커피 한 스푼 반에 설탕과 크림을 각각 두 스푼씩 넣는 게 제일 적당했다. 지금은 편리한 믹스 커피가 나와서 비율을 고민하지 않고 뜨거운 물에 넣기만 하면 된다. 믹스 커피는 국민의 표준 입맛이 되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믹스 커피 애호가였다. 무조건 믹스 커피, 아니면 자판기 커피만 고집했다. 수십 년간 인이 박힌 달달한 맛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믹스 커피가 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하루에 두세 봉지 정도야 무슨 영향이 있겠냐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커피 취향이 바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설탕과 크림이 없는 커피를 마셔야 할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쓴 커피를 맛보면서 입맛도 차차 적응해 가고 있다. 마시고 나면 담백한 향기가 오히려 믹스 커피보다 낫게 느껴진다. 이젠 집에도 '모카골드 마일드'와 함께 '카누'가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변하는 데는 몸에 나쁜 건 피하고 싶다는 의식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설탕과 크림에 대한 경고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몸에 해가 없는 편을 선택하고 싶다. 그래서 밖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아메리카노를 자주 찾는다. 아메리카노의 심심하면서 구수한 맛이 옛날 식후에 숭늉을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커피 한 잔의 원가가 400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메리카노 한 잔은 보통 4천 원 정도다. 커피점에서야 자릿값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데는 아무래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게 된다. 다행히 요사이는 1,500원 하는 아메리카노가 나와서 애용하고 있다.

 

집에 커피 기구를 장만하고 원두를 사와서 직접 제조해 먹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정도로 입맛이 예민하지 못할 뿐더러 번거로운 절차를 감내하지 못한다. 원산지나 제조 공법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모양이다. 그저 물 마시듯 하는 나는 그런 경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입맛도 변해간다. 단맛이 당길 때는 믹스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이젠 현저히 줄었다. 아메리카노는 내 새로운 애인이다. 너무 쉽게 변심한 것 같아 전 애인에게 미안하다. 바둑 둘 때나 당구 칠 때, 내 손에는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다. 집 주위를 산책하고 난 뒤에도 항상 빽다방에 들러 주문을 한다. "아메리카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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