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소금

샌. 2016. 4. 27. 10:29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를 드러내 보이겠다고 했지만, 이야기 전개가 부자연스러워 효과가 반감된다.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 소설 <소금>은 우리 시대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자본주의는 빨대와 깔대기의 거대한 네트워크란 작가의 말에 동의하지만 아버지만 희생자라고 할 수도 없다. 피해자는 아버지를 포함한 체제 속의 모든 구성원들이다. 소설은 아버지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선명우는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상무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가정에서 그의 자리는 없다. 아내와 세 딸의 화려한 소비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돈 버는 로봇일 뿐이다. 별나긴 하지만 우리 시대 아버지의 표상으로 봐도 무난하다. 어느 날 선명우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남은 가족은 해체되고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선명우는 신분을 숨기고 불우한 다른 가족과 합쳐 제2의 인생을 산다. 대체로 그런 줄거리다.

 

아무리 대접 못 받는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해도 30년 가까이 함께 한 가족을 내팽개치고 자기 길을 갈 남자가 얼마나 될까. 더구나 마땅한 당위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남은 가족은 모녀가 힘을 합쳐 역경을 헤쳐나가는 게 보통이다. 이 집은 한순간에 몰락한다. 세 딸의 행동은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막내딸은 아빠를 찾아 나서지만 간절함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목이 많다.

 

소설이 말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읽힌다. 그러나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고뇌를 전하는 장치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무척 특이하다. 무책임하면서도 이타적인 양면을 가진 선명우가 있고, 순정파인 세희도 그렇다. 작가의 전작인 <은교>에서 느껴진 어색함이 여기서도 보인다.

 

워낙 유명한 작가여서 좀 삐딱하게 봤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소금>을 바라봐야겠다. 강도는 다르겠지만 선명우는 우리 시대 가장 모습의 일면이다. 처성자옥(妻城子獄)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야만의 시대에 나는 어떤 관점으로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 길을 찾아가는 것이 타인 희생의 대가라면 그것 또한 폭력인 것이다.

 

<소금>은 가족 제도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한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방아쇠가 당겨지자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외피만 가족일 뿐 이기성으로 뭉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집단이다. 그런 가정을 뛰쳐나온 선명우는 우연히 만난 다른 가족의 일원이 되어 그들을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혈연 중심의 가족만이 유일한 시스템은 아닐 수 있다. 개방 사회가 되면 폐쇄적인 가족주의는 점차 소멸되어 갈 것이다.

 

자본의 폭력이 불러오는 인간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극단적인 상황 설정이 아쉽기는 하지만 종종 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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