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서울 사는 나무

샌. 2016. 4. 1. 10:29

이 책을 읽으며 먼저 지은이에게 관심이 갔다. 나무와 관계된 이력이 2년밖에 안 되는데 이런 책을 쓴다는 게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표지 뒷면에 적힌 장세이 씨 자신에 대한 소개가 재미있다.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남. 사주가 좋아 명리학을 공부한 할아버지의 총애를 듬뿍 받음. 딸만 넷인 집안의 아들 대용으로 취학 전까지 빡빡머리에 바지만 입음. 인생이 정해진 대로 흐른다는 걸 내내 의심하며 자람.

 

2001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졸업장을 안았으나 지긋지긋한 IMF 여파로 그해 응시하려던 분야의 임용고시가 열리지 않음. 반년 동안 한 교육학 공부, 말짱 헛것 됨. 인생의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절감함.

 

2002년 방송국 PD가 된 언니 따라 엉겁결에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음. 언니한테 위성안테나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별난 잡지를 보고 신입기자 모집에 응시, 덜컥 잡지기자가 됨. 숱한 잡지, 몇 권의 여행서와 인터부집을 냄.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걸 어렴풋이 암.

 

2013년 12년 잡지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음. 대책도 없이 거리를 헤매다 숲연구소를 발견, 나무를 배우고 숲에 들기 시작. 심신의 독기와 체기가 조금씩 사라져감. 인생은 자연의 순리 아래 있음을 다시금 깨달음.

 

2015년 창덕궁 옆 원서동에 생태창작작업실 '산책아이'를 열고, 스스로 생태이야기꾼이 됨. 생태와 관련된 글을 쓰며, 때때로 아이들과 '숲에서 글 짓고 놀기' 수업을 함. 인생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이처럼 살아야 행복하다'고 결론 내리는 중.

 

<서울 사는 나무>는 서울의 길가, 공원, 궁궐에 사는 서른두 그루 나움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어느날, 담배를 피우던 중년 남자가 나무 줄기에 꽁초를 비벼 끄는 것을 보면서 서울 사는 나무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고 한다. 아마 서울 사는 자신의 위치와 오버랩 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무와 풀이 가진 생명력과 역사성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지은이는 숲해설가 교육을 받고 나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왔다.

 

단순히 나무의 생태적 해설서가 아니라 지은이의 섬세한 감성으로 가득한 책이다. 나무에 대한 애정이 듬뿍하다. 직접 찍은 사진과 더불어 고운 문장이 가슴을 적신다. 물론 나무에 대한 지식도 많이 얻을 수 있다. 고작 2년 나무 공부를 하고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거야, 라는 의문이 수도 없이 들었다. 질투심인지도 모르겠다.

 

'삼청공원 나무 산책'이라는 별지가 첨부되어 있다. 삼청공원에 있는 모든 나무의 이름을 밝힌 나무 지도다. 호기심이 생기면 이름을 알고 싶어지는 건 사람이든 나무든 마찬가지다. 이 지도 한 장 들고 삼청공원을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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