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나의 생명 수업

샌. 2016. 3. 7. 20:11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지은이의 마음이 따스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성호 선생이 20여 년간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줄기에서 만난 자연의 벗들과 만나고 대화한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뒷산이라고 표현한 학교 가까이 있는 산이 제일 많이 등장한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생명체가 주인공들이다.

 

선생의 관심은 다양하다. 풀과 나무 같은 식물에서 어류, 조류, 포유류 등 범위가 넓다. 버섯이나 오색딱따구리처럼 수개월 넘게 매달리기도 한다. 대상이 무엇이든 생명을 대하는 지은이의 따스한 마음이 감동을 준다. 무엇을 보느냐보다 중요한 건 얼마큼 사랑하느냐다. 집 앞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거기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

 

닭의장풀에 대해 쓴 글에서도 지은이의 그런 마음이 읽힌다.

 

..... 주차장으로 향하는 아파트의 그늘진 벽을 따라 달개비 한 무더기가 피어 있습니다. 출근하는 길에 그 앞에 무릎 접고 쪼그려 앉아 어여쁜 꽃들을 잠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꽃의 빛깔을 따라 파란빛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 꼬마 친구가 다가와 앉으며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묻기에 달개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출근길이고 꼬마는 등굣길이라 천천히 아주 자상하게 설명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꼬마가 달개비에 대하여 얼마나 제대로 알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꼬마의 눈빛이 더욱 맑아진 것으로 감사한 아침이었습니다.

 달개비가 세력을 점점 더 넓혀 사람이 다니는 길까지 밀고 나오는 것이 조금 불안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달개비 무리가 혹시 누군가에게 짓밟혀 있더라도 그것이 나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달개비를 만났던 그 꼬마 친구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할 것입니다.

 

작은 풀꽃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남과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는 예가 있다. 지은이는 중간고사가 끝나면 두 권의 책을 들고 강의실로 가서 한 권은 가장 답안을 못 쓴 친구에게 주었고, 또 한 권은 가장 잘 쓴 친구에게 주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일등과 꼴찌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과 일등은 다음에 꼴찌의 입장에서 책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며, 꼴찌는 다음에 일등의 위치로 책을 받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도 선생 노릇을 했지만 그런 마음을 낼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책에는 지은이의 이런 따스한 마음씨가 가득하다.

 

지은이는 야생의 생명들이 맨몸으로 맞는 비의 느낌을 알기 위해 툇마루를 벗어나 쏟아지는 비에 몸을 맡겨 보기도 한다. 사랑은 우산을 건네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자연에 대한 이런 감성이야말로 이 시대에 제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다른 무엇보다 그 하나의 마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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