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소설가의 일

샌. 2016. 2. 28. 11:53

김연수 작가의 소설 작법이다. 딱딱한 교재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수필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소설 쓰기만이 아니라 인생론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일>이 소설 쓰기에 관한 책이라는 걸 모른 채 읽었다. 서가에서 훑어볼 때는 소설가의 일상에 대한 산문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의 일상이 소설 쓰는 일일 테니 소설 작법에 관한 내용이어도 속은 것은 아니다. 이과 전공으로서 문학 원론에 관한 내용이 색다르고 흥미로웠다.

 

책 내용 중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쓴다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은이는 '감각으로 쓰고 생각하며 교정한다'고 말한다. 쓰기보다는 고치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구성을 완벽하게 결정해 놓고 소설 쓰기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 한 번 쓰면 그대로 완성되는 게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다. 우선 마음에 안 들더라도, 심한 경우 토가 나올 정도로 형편없어 보이는 글이라도 우선 쓴 뒤에 온 힘을 기울여 수정한다.

 

그리고 문학적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소설가란 독창적이며 디테일한 표현의 발견사다. 시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글을 쓸 때 제일 조심할 것이 상투적인 표현에 젖어 있는 무감각이다.

 

지은이는 시장에서 들었던 말을 소개한다. 시장 아줌마들이 주고받는 일상의 대화가 소설가들의 문장보다 백 배나 나은 경우다. 어느 시장에서 훔쳐 들은 바에 따르면, 어떤 집의 아들이 자살하자 아줌마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가 세상이 텅 비어 보였는갑다." 아마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짜는 소설가들의 대사는 이런 식일지 모른다. "그 아이가 삶의 허무를 견딜 수 없었나봐요."

 

진부한 욕망의 말들을 참신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그런 문장을 통해 캐릭터가 완성된다. 이것은 소설만이 아니라 무슨 글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습관적이고 타성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겠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절감했다.

 

<소설가의 일>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절망하는 한 소설가의 모습이 보인다. 프로의 세계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책은 내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한다. 소설을 잘 쓰는 법에 대해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 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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