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목표 지향의 삶

샌. 2016. 6. 13. 07:58

근대화가 한창일 때는 목표 지향의 삶이 찬양받았다. 국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지도자가 군인 출신이어선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이 지배한 시대였다. 그때는 개인의 삶도 비슷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그래서 놀라운 성과를 이룬 건 사실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경쟁 중심의 피로사회는 그 시절이 남긴 쓴 유산이다. 아직도 6, 70년대의 패러다임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몸은 어른으로 성장했는데 아직 어린아이의 옷을 입고 있는 꼴이다.

 

목표를 중시하는 결과주의 사회는 자아 실현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집단주의 문화와도 관계가 깊다. 집단주의는 정치적으로는 독재의 온상이면서 개인적으로는 불행의 씨앗이다. 목표를 중시하게 되면 경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1등만이 파이를 독점하는 사회는 수많은 루저를 만든다.

 

이런 사회는 내실보다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뚱뚱하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넘어 거의 죄악으로 여긴다. 여자들은 평생을 다이어트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뇌리에는 정형화된 모델이 각인되어 있다. 인간은 기계와 달리 결코 표준화될 수 없다. 그런데 감량의 목표를 정해 놓고 살을 빼기 위해 고통을 참는다. 개인이 행복하지 못하면 사회도 마찬가지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서양 사람의 태도와 비교해 보면 우리의 실상이 금방 드러난다. 다름은 정상과 비정상이 아니라 개성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과정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무언가에 목표를 정하고 매진해야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가 보다. 개발 시대부터의 못된 관성이다. 등산에 비유하면, 정상 정복이 목적인 경우와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 둥 살 둥 올라간다. 주변 경치를 즐길 여유가 없다. 삶의 기준이 상하 높이로 결정되어 있는 사회다.

 

목표 지향의 삶은 대개 불행하다. 혹여 목표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과정의 고통 때문에 허무해지는 게 다반사다. 오직 자식 하나 잘 되기를 바라고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고 자부하는 부모가 노년에 느끼는 쓸쓸함과 비슷하다. 목표를 이룬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학교 현장이 황폐해지는 이유도 학생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치기보다 대학 입시라는 목표에 올인하기 때문이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을 천편일률적으로 교육한다는 발상이 잘못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교육에 대한 기본 인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지금의 내 삶을 즐겨야 한다. 목표보다는 과정이다. 어릴 때가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목표 지향의 삶이 체질화되면 어른이 지나서 바꾸기 힘들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카르페 디엠"을 강조했다. 목표 지향보다는 과정 중심의 삶을 살라는 충고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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