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가늘고 길게

샌. 2016. 5. 17. 16:42

굵게 사는 삶은 꿈꿔 보지 않았다. 거창한 꿈은 나와는 관계가 없었다. 초등학교 학적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장래 희망은 내리 교사가 적혀 있었다. 부모 희망란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그런대로 했으니 의사나 판사를 시켜볼 만도 했건만 아버지는 오로지 교사 되기를 바라셨다. 대학생 때 고시 공부하던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시던 아버지셨다. 아버지도 나를 잘 파악하고 계셨다.

 

요사이는 교사 되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사가 부족해서 단기 양성 과정도 있었다. 남자가 교사를 희망하면 졸장부 취급을 받던 때였다. 어릴 때부터 내 기본 마인드는 적게 먹고 적게 싸자 주의였다.

 

나는 햄릿형이다. 소심하다. 사상체질로는 소음인에 속한다. 가늘게 살 팔자다. 당연히 굵고 짧게 사는 걸 부러워하지 않는다. 제 타고난 성향에 맞게 사는 게 옳은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속담이 틀린 말은 아니다. 분수를 모르고 덤비는 데서 늘 사달이 벌어진다.

 

가늘고 짧게 살게 되면 억울하겠지만, 가늘고 길게 사는 건 괜찮은 일이라고 본다. 노년이 되면 그 효과가 여실히 드러난다. 박수를 받으며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다 중간에 기권하는 것보다는, 뒤에 처지더라고 꾸준히 달려 결승점을 통과하는 게 인생의 승자다.

 

세월이 흐를수록 가늘고 길게 사는 걸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중의 하나에 걷기가 있다. 조금씩이라도 오래, 늦은 나이까지 걷게 되기를 원한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무릎이 고장 나 산을 버리는 것보다는 뒷산이라도 꾸준히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한꺼번에 쓰고 소진되는 에너지보다는 조금씩 나누어 오래 사용하는 게 정도다.

 

젊었을 때 빛을 보던 성격은 늙어서는 힘을 못 쓴다. 양지식물이 그늘에 들어간 꼴이다. 대신에 젊어서 하찮게 여겼던 성격이 늙어서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가 보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어느 기관의 모토가 있었다. 나는 음지식물에 속한다. 음지식물은 음지에 만족할 뿐 결코 양지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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