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 2016. 8. 3. 15:01

노인이 되는 입구에서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 있다. 나이 든다고 절대 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다. 더 철딱서니가 없어지고 옹졸하게 된다. 그런 내 꼬락서니를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서글픈 일이다. 몸이 쇠약해지는 건 차라리 괜찮다.

 

나이가 들면 원숙해지고 인격도 높아질 거라 생각한 건 젊었을 때의 착각이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연상하면 우선 여유가 떠올랐다. 시간의 여유와 함께 당연히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관용과 이해, 그리고 흘러가는 세상을 관조하는 힘은 노년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친구는 별로 없다. 늙으면서 가장 경계할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되는 일이다. 인생의 경험이 옹고집으로 변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자기 세계에 갇히면 독단적이 된다. 꼰대 기질도 여기서 나온다.

 

살피고 조심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가망은 별로 없다. 경험상 그렇다. 미래는 지금껏 살아온 삶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 타고난 그릇을 평생 품고 산다. 나이 든다고 그릇 크기가 커지지 않는다. 오히려 줄줄 새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 며칠 한심한 내 모습에 심히 우울했다. 자잘한 일에 번민하고 속 태우는 내가 미웠다. 이런 수준이 내가 상상했던 어른은 아니었다. 남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내 안의 속물성과 이중성을 바라본다는 건 엄청 괴로운 일이다. 남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더 무섭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성찰도 좋지만 과하면 병이다. 한 마디로 자아 과잉이다. 내가 스스로 진단한 결과다. 

 

나이가 주는 원숙한 이미지를 만족시킬 능력이 나한테는 없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아끼고 애틋이 여길 수밖에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는 연약하고 불쌍한 존재다. 그런 인간적 약점이 서로를 보듬어 안아야 할 이유가 된다. 그 많은 한탄과 실망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하고, 웃고,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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