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골프 권하는 친구

샌. 2012. 7. 1. 09:39

퇴직하고 나서 제일 많이 받은 권고가 골프를 배우라는 것이었다. 물론 골프를 즐기는 친구들로부터다. 골프를 못 치니 그들과 어울리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쉬울 건 없지만, 이왕이면 다양하게 친구를 사귀는 데는 약점이 된다. 래서 아주 잠깐이지만 골프를 배워볼까 하고 망설인 적도 있었다.

골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골프 예찬론을 듣는다.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며, 또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는데 공감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나에게는 골프에 대한 거부감이있다. 골프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골프장을 생태적 측면에서는 '녹색 사막'이라고 부른다. 골프장은 동식물이 어우러진 다양한 생태계를 파괴하고 녹색 잔디로 넓은 면적을 균일화시킨다. 잔디를 유지하자면 많은 양의 농약과 관리가 필요하다. 보기에는 멋있지만 생태적으로는 빵점인 곳이다. 산과 숲을 파괴하고 얻은 결과로 고작 드문드문 몇 사람이 라운딩한다. 골프장 주변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금도 많은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지만 여러 곳에서 주민과 마찰을 빚는다. 나중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위화감도 생긴다. 전에 여주에서 살 때 주변에 골프장이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이 세상은 골프를 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의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는 걸 경험했다.

물론 이런 얘기를 골프 치는 친구에게는 하지 못한다. 너만 환경 생각하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친구가 골프 얘기에 열 올릴 때면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들어준다. 이 나이에 골프를 배워 뭣 하겠느냐고 대답해 준다. 솔직히 무엇에 심취하는 게 두렵기도 하다. 산에도 골프채를 들고 가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퍼팅 연습을 하느라 딸그락 소리를 내는 열정을 닮을까 두렵다. 더구나 오랜 기간 하수의 설움을 겪어야 하는 것도 싫다. 젊었다면 혹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골프에 가까이하기 어려운 이유는 경제적 사정 때문이다. 한 번 라운딩을 나가면 최소한 20만 원이 넘게 든다고 알고 있다. 내 한 달 용돈을 하루에 다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지갑에 남아 있는 돈 걱정을 하면서 골프장에 출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역시 친구에게는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얄팍한 자존심 때문인지 모른다. 이래저래 골프는 복잡하다. TV로 골프 시합을 보면 드라이브 치는 모습이 호쾌하기는 하다. 그러나 홀에 집어넣는 퍼팅은 무척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내 같이 소심한 사람이 할 운동이 아니라고 지레 예단하고 있다.

전에 골프를 열심히 치던 친구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골프장에 나가질 못한다. 먹고사느라 시간 내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선 돈이 없다. 어찌 되었든 골프는 아직 여유 있는 계층의 운동이고 취미다. 그런 게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에 등산이라면 경제 사정에 상관없이 계속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지속 가능한 취미로 골프보다 등산이 훨씬 낫다고 자위를 한다. 등산이 골프보다 좋은 이유가 훨씬 더 많다.

이번 달에 대학 동기들과 중국에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여기에도 골프를 치는 친구와 못 치는 친구가 있다. 골프 치는 친구들은 따로 시간을 내서 골프장을 찾겠다고 한다. 그래서 두 종류로 일정을 잡아야 한다.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이 잘 아는 코치를 소개해 줄 테니 두 주일만 배우라고 한다. 그러면 필드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프에도 족집게 레슨이 있는 모양이다. 골프 예찬론자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골프는 호감이 가지 않는 운동이다. 땅이 넓은 외국이라면 모를까, 우리나라 지형적 조건에서 골프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골프 칠 일은 없을 것 같다. 골프 아니어도 하고 싶은 놀이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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