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뉴질랜드(4) - 밀포드 트레킹

샌. 2017. 3. 7. 12:25

 

'밀포드 트레킹' 때문에 뉴질랜드에 왔다. 세계 3대 트레킹이라고 하면 중국의 호도협 트레킹, 페루의 마추픽추 트레킹, 그리고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레킹이 꼽힌다. 여기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해도, 그만큼 밀포드 트렉은 누구나가 걷고 싶어하는 길이다.

 

뉴질랜드 여행 열흘째, 드디어 밀포드로 들어간다. 3박4일 동안 헛(Hut)을 이용하는 트레킹이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테아나우다운스(TeAnau Downs)에서 배를 타고 그레이드워프(Glade Wharf)로 이동한다. 여기가 트레킹 출발점이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준 건 샌드플라이(sandfly)였다. 우리말로 하면 '모래파리'인데, 모기처럼 피를 빨아먹는다. 물리면 피부가 발갛게 변하고 엄청 가렵다. 흔적이 한 달 넘게 가기도 한다. 밀포드만 아니고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내내 이 샌드플라이에 시달려야 했다.

 

 

첫번째 롯지(Lodge)를 지난다.

 

밀포드 트레킹은 롯지를 이용하는 팀과, 헛을 이용하는 팀이 있다. 롯지는 호텔급으로 식사가 제공되고 온수 샤워도 할 수 있다. 가이드가 동행하며 개인은 가벼운 짐만 지면 된다. 편한 대신 경비가 200만 원이 넘는다. 대신 헛은 산장과 비슷하다. 잠자리와 공동 취사장만 있다. 4일 동안 본인이 먹을 음식과 침구를 메고 가야 한다. 보통 베낭 무게가 15kg에 이른다. 경비는 롯지의 1/5 수준이다. 밀포드 트레킹은 하루에 롯지 팀 50명, 헛 팀 40명으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헛 팀에 속해 있다. 힘은 들어도 자유로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샌드플라이 때문에 벌써부터 얼굴 모기장을 쓴다.

 

 

 

 

길은 클린턴(Clinton) 강을 따라 이어진다. 우리나라 동강 풍경이 떠오른다. 쪽빛 물색이 예쁘다.

 

 

 

 

습기가 많아선지 이끼가 번성하고 있다.

 

 

 

첫날은 맛보기로 5km 정도만 걷고 클린턴 헛(Clinton Hut)에 도착했다. 간간이 이슬비가 내렸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날씨였다. 그러나 뒷날은 'heavy rain'으로 예보되어 있다.

 

누군가 말했다. "밀포드에서는 맑으면 'happy', 비가 오면 'happy & happy', 심한 비가 오면 'happy & happy & happy'다." 그래도 나는 별난 경치보다는 쾌청한 날씨가 좋다.

 

 

 

둘째날, 가는 비가 내린다. 다행히 바람은 없다. 우장을 챙기고 출발한다.

 

 

 

 

 

 

밤에 내린 비로 산은 온통 폭포로 변했다. "Yes, beautiful!"

 

 

 

숲은 이끼로 가득하다. 야쿠시마 숲이 연상된다. 그쪽과 기후 여건이 비슷할 것이다.

 

 

 

 

 

빙하가 만든 깊은 U자형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다. 이래서 비가 오면 '더블 해피'라고 말했던 것 같다.

 

개울에 앉아 이 풍경을 즐기고 싶은데, 잠깐 서기만 해도 샌드플라이가 가만 두질 않는다. 샌드플라이는 특히 물가에 많다.

 

 

 

 

 

 

 

 

 

여기는 고사리와 이끼 천국이다.

 

 

 

둘째날 걸은 거리는 16.5km, 여섯 시간이 걸려 민타로 헛(Mintaro Hut)에 도착했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걷기에는 그다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무수한 산 폭포의 장관을 만들어 주었다.

 

 

 

트레킹 셋째날, 밤새 빗소리가 요란했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잦아들었다. 산 정상부에는 밤새 눈이 쌓인 것 같다.

 

 

다시 이끼 덮인 나무 사이를 지난다.

 

 

오늘은 고개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길은 급한 오르막이 된다.

 

 

일행에 뒤처져서 걷는다. 뒤로 뉴질랜드에 배낭 여행을 온 70대 부부가 따라온다. 그러나 이분들도 곧 나를 추월한다.

 

 

 

 

 

 

 

길에는 야생화도 많다. 그러나 느긋하게 감상하기에는 갈 길이 급하다.

 

 

 

힘들게 맥키넌 패스(Mackinnon Pass)에 오르다. 해발 1,069m 지점이다.

 

밀포드 트랙은 1888년 맥키넌에 의해 개척되었다. 안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그의 열정과 노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만든 그는 1892년 이곳 인근 호수에서 익사했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가 밀포드에서 제일이라는데 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온 몸이 물에 젖으니 배낭이 천근만근이다. 우산이나 우의도 별 소용이 없다.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산도 물줄기를 뒤집어 쓰고 있다. 동료는 무리하게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가 고장나 버렸다. 

 

 

 

악전고투 끝에 물에 빠진 새앙쥐가 되어 덤플링 헛(Dumpling Hut)에 도착하다. 트레킹의 중심에서 악천후를 만나다. 이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리라. 젖은 몸을 말리고 일찍 침낭 속으로 들어가다. 이날은 16km를 걷다.

 

 

 

트레킹 넷째날도 가는 비 속에서 출발하다. 굵은 빗줄기가 잦아든 게 다행이다.

 

 

 

 

계곡마다 폭포가 우렁차고 길도 끊어지다. 나무가 쓰러져서 우회하기도 하다.

 

 

 

강을 따라 길은 순하게 이어진다.

 

 

나흘 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 반갑다.

 

 

 

18km를 걸어내려와 드디어 종착지인 샌드플라이 포인트(Sandfly Point)에 도착하다.

 

나흘 내내 빗속을 걸은 밀포드 트레킹이었다. 특히 셋째날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날만이라도 맑은 하늘이 허락되었다면 밀포드의 진면목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밀포드 트랙은 하루에 90명으로 인원이 제한되는 접근하기 어려운 길이다. 1년 전에 예약이 끝난다. 다시 뉴질랜드에 갈 일은 없겠지만, 밀포드 트랙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밀포드 하면 멋진 경치로보다는 비를 흠뻑 맞으며 고생한 것으로 기억에 남으리라. 그것 역시 색다른 경험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