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아프면 서러워

샌. 2017. 5. 1. 10:23

우리 동네에도 종합병원이 생겼다. 손주가 옆에 있으니 병원에 자주 들락거린다. 어린아이는 병치레가 잦다. 대부분이 감기 증세다. 옛날 같으면 참고 견딜 만한 것도 요즘은 무조건 병원에 간다. 그 결과 약을 달고 산다. 기침이 심하다고 최근에는 두 번이나 폐 사진을 찍었다. 조기 치료도 좋지만 어릴 때부터 과잉 진료가 아닌지 안타깝다. 그러나 옆에서 콜록대는 자식을 보며 버티기만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속말을 참고 기사 노릇을 할 뿐이다.

 

진료실 밖에서 대기하다 보면 이런저런 환자를 본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아프면 안 되는데, 라는 독백이 절로 난다.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게 없다. 지지난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일 두려웠던 건 무력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환자로서 나는 철저히 수동적 존재가 되었다. 나라는 인간은 의료 시스템에 맡겨진 하나의 물건일 뿐이었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마루타'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장기 입원이었다면 가족들한테서도 눈총을 받았을지 모른다.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편이 조금 전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아프다니까 딸이 병원으로 찾아온 것 같다.

 

"네 아버지는 사는 게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왜? 어떤데?"

"맨날 약만 먹고, 안 아픈 데가 없다. 고혈압약, 당뇨약, 피부병약, 도대체 몇 가지인 줄 모른다."

"생활 습관이 잘못된 것 아냐?"

"젊었을 때부터 제멋대로 살더니 저 고생이지 뭐. 동정도 못 받는다."

"그래도 엄마가 잘 해 줘."

"아휴~ 밥은 잘 먹는 걸 보니 암은 아니겠지. 내 고생길이 훤하다."

 

남편 염려보다도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아내가 야속해 보였다. 사실은 이게 실제 우리의 본모습일지 모른다. 어떤 병은 본인 책임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아무리 큰소리치던 사람도 늙어서 환자가 되면 을의 위치로 전락한다. 눈치를 봐야 하는 환자는 서럽다.

 

환자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제 몸보다도 가족에게 폐를 끼칠 것 같다는 염려 때문이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늘 그 말씀을 하신다. "자식 힘들게 하지 않고 죽어야 하는데." 치매 노모를 모시는 지인이 하는 말을 들었다. 벽에 똥칠하는 행위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식에게 창피해서 나름대로 똥을 치우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온통 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무척 슬펐다.

 

생노병사는 인간의 숙명이다. 오래 사는 게 축복이 아니라 '어떻게' 늙고, 병들고, 죽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언젠가는 내 몸뚱이를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아프면 서럽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순간에 가버리는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도 오히려 당신이 행복한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쇠약해진 육체로 억지로 버텨내야 하는 고통은 형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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