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샌. 2017. 5. 9. 17:22

19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다. 이번 선거는 좀 싱겁다. 한 후보가 워낙 독주를 하고 있어서 이미 몇 달 전에 결정이 났다. 타 후보들이 큰소리를 치긴 하지만 허장성세로 들린다. 막판에 걱정스러웠던 반대 진영의 단일화 변수도 없었다. 이제 몇 시간 뒤에 내 판단을 확인하는 절차만 남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친구들은 대부분 강도만 다를 뿐 보수적 경향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고향 학교 동문 단톡방은 유별나다. 거의 문자 폭력 수준으로 극우적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온건한 보수는 말없이 조용히 있다. 일부 극렬한 인간들이 단톡방을 점령하고 제 정치적 견해를 강요한다. 자제시키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데 이렇게 세상을 보는 게 다르구나, 참 신기할 뿐이다. 사람은 제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두 눈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걸 다 보는 것은 아니다. 제 보고 싶은 곳으로만 시선이 꽂힌다. 정치적 사안도 마찬가지다. 찬성하는 후보는 장점만 보이고, 반대하는 후보는 단점만 보인다. 우파나 좌파나 별로 다르지 않다. 그 정도가 너무 편향되어 있을 때 우리는 꼴통이라 부른다. 정치적 혼란기에는 이런 꼴통들이 득세를 한다.

 

정치적 소신만이 아니라 종교의 믿음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특정 종교의 틀에 갇히면 시선이 고정되어 버린다. 제 믿는 것만 옳다고 여기면 다른 것은 모두 그른 것이 된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했는데, 도리어 제 올가미에 걸린 크리스천이 많다. 종교에서 꼴통이 광신도다.

 

한쪽 견해에 갇히면 세상의 다양성을 보지 못한다. 벽에 난 작은 창문으로 세상을 보면서 그게 세계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누구나 그런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러나 그것이 창문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난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여부가 여기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자유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일이다. 노인이 되면서 생각이 완고해지는 것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딱딱하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수긍하고 되돌아본다면 젊은이로부터 꼰대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갈망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세상이 좀 조용해질까?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한, 진영간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시도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다. 우선 승자의 포용력을 기대한다. 제발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참모로 쓰지 말길 바란다. 자신을 찍지 않은 국민에게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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