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피엔스

샌. 2017. 6. 13. 09:43

다섯 달 전에 이 책을 사서 읽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흥미도 있어 단숨에 독파했다. 인간 진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많아 책상 위에 두다가 이번에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이라는 부제대로 동물에서 출발한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는지를 묻고 밝힌다.

 

지금 우리는 자연선택에 의한 유기적 생명의 시대에서 지적 설계에 의한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사피엔스가 근본적인 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불장난으로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다면 사피엔스는 전혀 새로운 종으로 대체될 것이다. 사피엔스의 종말이 눈앞에 왔다. 아마 우리가 사피엔스의 거의 마지막 세대에 가까워졌다.

 

저자는 사피엔스가 20만 년 전에 등장해서 지금까지 세 번의 질적인 혁명을 거쳤다고 말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다.

 

7만 년 전에 시작된 인지혁명으로 사피엔스의 뇌에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법이 생겨났다. 이때 언어가 등장했고, 사피엔스는 집단 상상을 통해 대규모로 협력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전설, 신화, 신, 종교 같은 관념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약 1만 년 전의 농업혁명은 대집단의 운영이 가능한 물적 토대가 되면서 상상 속의 질서와 결합하여 제국과 문명을 건설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상상 속의 질서'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이유를 이 상상 속의 질서에서 찾는다. 구체적으로는 함무라비 법전에서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해당 되고, 인간이 가진 이념, 인권, 민주주의, 자본주의, 종교가 모두 상상 속의 질서다. 실재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믿으면서 실제로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한다.

 

우리는 누구나 그 시대가 가진 상상의 질서의 포로들이다. 우리는 상상의 질서에서 태어났고, 태어날 때부터 지배적인 신화에 의해 욕망의 형태가 결정된다. 욕망하는 것은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착각일 뿐이다. 욕망하도록 만든 신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의 자유의지도 환상인지 모른다.

 

농업혁명을 다루는 저자의 견해도 독특하다. 농업혁명이 번영과 진보의 기점이었는지, 자연과의 공생을 버리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전환점이었는지 묻는다. 농부가 수렵채집인보다 행복했다는 증거는 없다. 농업혁명이 진화적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몰라도 인간이나 가축 등에게는 고통을 안겼다. 저자는 농업혁명의 핵심을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에 있다고 본다. 농업혁명은 인류에게 덫이고 사기였다.

 

호모 사피엔스가 식물을 길들인 게 아니라, 벼와 밀 같은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식물이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사피엔스를 이용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 진화적 성공 뒤에는 다른 개체의 고통이 따른다. 이 책에서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5백 년 전에 시작된 과학혁명으로 인류는 전대미문의 힘을 얻기 시작했다. 지구 전체가 단일한 무대가 되고, 산업혁명으로 가족과 공동체가 국가와 시장으로 대체되었다. 동식물의 대량 멸종이 뒤따랐다.

 

이제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의 경계를 초월하기 시작하고 있다. 생명체의 형태도 자연선택보다 지적설계에 의해 결정된다.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공학의 발전으로 사피엔스는 새로운 종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 종은 체격, 인지력, 감정에서 우리와는 완전히 달라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죽음도 기술적 문제로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다. 아마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 중에 불멸의 존재가 될 이도 있을 것이다. 동물에서 출발한 사피엔스는 결국 신에 가까운 존재로 변화된다.

 

과학은 결국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사피엔스의 운명도 거기에 맡겨져 있다. 우리가 그들이 가는 방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책 <사피엔스>는 유빌 하라리가 썼다. 하라리는 현재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거시적 안목으로 세계사와 인류사 연구를 하고 있다. 책의 끝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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