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호모 데우스

샌. 2017. 6. 25. 10:46

전작 <사피엔스>가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정복하게 되었는가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21세기 신기술과 만나게 되는 인류의 미래를 예견한다. 인간은 상호주관적 실재를 믿는 능력으로 대규모 협력이 가능했고,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기가 도래했다.

 

이 책 <호모 데우스>에서는 인본주의 혁명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다. 신이 사라진 자리의 빈 구멍을 메워준 것이 인본주의 종교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세계를 정복한 새로운 교리가 인본주의다. 중세에서는 모든 판단을 종교의 경전이 했다. 진리는 이미 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서 의미와 권위의 최고 원천은 자신의 내면이 되었다.

 

기아, 질병, 전쟁을 극복한 인류는 자유 인본주의 정신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유전자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은 죽음마저 정복하고 인간에게 신적 능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호모 데우스가 되는 과정에서 아마 대부분의 사피엔스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것이다. 빛에는 늘 그늘이 따른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 불멸의 가치로 믿는 것들이 그때가 되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게 분명하다. 개인주의, 자유시장, 인권, 민주주의 같은 자유주의 패키지는 미래에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자유의지나 단일 자아 같은 개념도 부정될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세상의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예견한다.

 

1. 인간은 경제적, 군사적 쓸모를 잃을 것이고, 따라서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은 그들에게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2. 시스템은 인간에게서 집단으로서의 가치는 여전히 발견할 테지만, 개인으로서의 가치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3. 시스템은 일부 특별한 개인들에게서 가치를 발견할 테지만, 그런 개인들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업그레이드된 초인간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엘리트 집단일 것이다.

 

이런 사회를 그린 영화로 '엘리시움'이 떠오른다. 황폐화된 지구에 사는 사피엔스와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에 사는 초인류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영화다. 저자도 미래에 나타날 신계급사회를 우려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발전하면 대다수 대중은 일자리를 잃고 쓸모없게 되리라는 예상이다. 잉여인간에게 개인의 가치는 의미를 잃는다. 아마 사피엔스는 자연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더 암울한 전망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순간 인류 전체가 절멸된다는 시나리오다. 어느 회사가 최초의 인공 슈퍼 지능을 설계한 다음 그것으로 파이값을 계산하는 것 같은 순수한 테스트를 실시한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인공지능이 지구를 점령하고 인간 종족을 제거하고 은하 끝까지 정복전쟁을 펼치고 우주 전체를 거대한 슈퍼 컴퓨터로 바꾸어 무한한 시간 동안 파이값을 훨씬 더 정확하게 계산한다. 결국 그것이 인공지능의 창조자가 그에게 준 신성한 임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기체를 알고리즘으로 본다. 인간의 의식이나 감정도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 비유기체의 알고리즘이 인간 알고리즘을 추월하는 지점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자신의 정신까지 기계에 맡겨야 할 것이다.

 

기술 인본주의로 나타날 두 번째 인지혁명은 결국 인간을 다운그레이드할 것이다. 비록 초인적 능력을 갖더라도 시스템이 그런 인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농부가 똑똑한 염소를 싫어하는 원리와 마찬가지다. 데이터는 잘 처리하지만 집중하고 꿈꾸고 의심하지 못하는 인간, 수백만 년 동안 우리는 성능이 향상된 침팬지로 살았지만 미래에는 특대형 개미가 될지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종이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고, 개인은 시스템을 이루는 칩이라는 설명도 특별하다. 인간이 유전자 전달 기재에 불과하다는 말에 놀란 게 20년 전인데, 이제는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라고 한다. 역사는 데이터 처리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바가 있다. 인간은 우주의 정보 흐름을 깊고 넓게 확장해야 한다. 인간의 경험은 신성하지 않고 호모 사피엔스는 창조의 정점도 호모 데우스의 전구체도 아니다. 인간은 그저 만물인터넷을 창조하는 도구이며, 만물인터넷은 결국 지구에서부터 은하 전체를 아우르고 나아가 우주 전체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이런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마치 신과 같을 것이고, 모든 것을 통제하며 인간은 그 안으로 흡수될 것이다.

 

이런 데이터교 혁명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인간이 신을 믿었고, 인간이 신성한 이유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야 몇몇 사람들이 용기를 내, 인간은 그 자체로 신성하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만물인터넷이 신성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필요를 위해 그것을 창조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만물인터넷은 그 자체로 신성해질 것이다.

 

데이터교가 세계를 정복하게 될 때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처음에는 인본주의의 과제들인 건강, 행복, 힘의 추구가 가속화될 것이다. 데이터교는 이런 인본주의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가 불멸, 행복, 신 같은 창조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뇌 용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결국 알고리즘들이 우리 대신 그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권한이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는 즉시 인본주의 과제들은 폐기된다. 만물인터넷이 운용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엔지니어에서 칩으로, 그런 다음에는 데이터로 전락할 것이고, 결국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빠진 흙덩이처럼 데이터 급류에 휩쓸려 흩어질 것이다. 바로 우리가 인지혁명을 겪으며 동물들에게 한 행위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세상의 흐름이나 기술이 결정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이라는 장대한 관점에서 볼 때 다음의 세 과정을 우리는 곧 맞닥뜨려야 할지 모른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도록 권한다. 책 내용이 워낙 강렬하고 충격적이어서 이런 질문이 무의미해 보이기는 하지만.....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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