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밖에서 본 한국사

샌. 2017. 7. 3. 10:11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술된 역사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후대의 올바른 역사 해석은 편향된 거품을 얼마나 잘 걷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른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새 정권 들어 국정 역사교과서 사태가 해결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김기협 선생의 <밖에서 본 한국사>는 우리 역사를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다. 안에서 쓴 한국사는 민족의 역사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미화하려 한다. 이것이 지나치면 국수주의가 된다. 자신을 똑바로 성찰하지 못하면 정신의 절름발이가 된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마찬가지다.

 

선생은 조선족 자치주에서 지내면서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한반도 밖에 있는 조선족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숲을 보자면 숲 밖으로 나가야 하듯 한발 물러서서 우리 역사를 본다.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정신을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보는 게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지만 같지는 않다. 중국이라는 강국을 옆에 두고 생존해 나가자면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자적인 문화나 정체성은 지켜나간다. 이것이 중국 옆에 있으면서 중국화 되지 않고 한민족의 고유성을 지켜나간 비결이다.

 

그런 점에서 사대(事大)와 자소(自小)는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노자 <도덕경>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겨야 하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보살피며 서로 공존한다. 중국과 맞짱을 뜨며 대륙을 정복까지 했던 민족이 뒤에는 모두 중국화 되어 버린 사례가 증명해 준다. 우리나라는 사대를 통해 독립국의 위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과거의 사대관계는 지금의 남한의 미국에 대한 종속관계보다 독립성이 더 강했다고 선생은 말한다. 그때는 중국 군대가 조선에 주둔한 일은 없었다. 사대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도록 만든 건 19세기 말 일본의 정책이었다. 조선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조선 진출에 방해가 되는 청나라와의 관계까지 폄하하는 일석이조의 관념이었다. 이 책을 통해 사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당쟁도 주어진 시대 조건에서 정치를 운영하는 하나의 틀이었다. 환국과 탕평 양상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나간 것이다.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이어서 신선했다.

 

우리는 신라보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선생은 좀 다르게 해석한다. 오히려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신라의 삼국통일이 더 나았으리라는 설명이다. 만약 군사 강국인 고구려가 통일하고 중국과 맞부딪쳤다면 나중에는 중국에 흡수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다. 고구려는 우리가 배운 것과는 달리 다민족국가였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선생은 아쉬움을 나타낸다. 고구려 유산에 대한 한민족의 배타적 소유권에 의문을 제기하면 민족반역자로 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보다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선생은 말한다. 이 문제 때문에 밖에서 보는 우리 역사를 써야겠다고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밖에서 본 한국사>는 우리 역사를 보는 관점을 새롭게 가르쳐 준 책이다.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여러 군데서 새로움을 느꼈다. 우리 역사를 의도적으로 미화해서도, 그렇다고 비하해서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 앞에서는 늘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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