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산다 / 다나카와 슌타로

샌. 2017. 8. 25. 11:12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당신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리움

그것은 요한 스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만나는 것

그리고 숨겨진 악을 주의 깊게 거부하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라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딘가에서 병사가 상처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갯짓 한다는 것

바다는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 산다 / 다나카와 슌타로

 

 

어렵지도 기교를 부리지도 않는 시다. 일상의 소소한 면면을 보여줌으로써 살아 있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게 아닐까. 다나카와 슌타로는 1931년생으로 80대 중반의 나이지만 왕성한 시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신경림 시인과 시에 대한 대담집을 내기도 했다. 두 분은 현실 참여에서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것 같다. 다나카와 슌타로가 천진한 시심의 소유자라는 건 아래 시를 봐도 확인된다.

 

 

바퀴벌레 똥은 작아

코끼리 똥은 커다래

 

똥은 모양이 가지가지야

 

돌멩이같이 생긴 똥

볏짚같이 생긴 똥

 

똥은 색깔도 가지가지야

 

똥은 풀이나 나무를 자라게 해

똥을 먹는 벌레도 있어

 

아무리 예쁜 사람 똥도 냄새가 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똥을 누지

 

똥아,

오늘도 힘차게 쑥 나와 줘

 

- 똥 / 다나카와 슌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