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석유장수 / 심호택

샌. 2017. 8. 31. 08:13

6학년 때 추운 밤

과외공부 하는데

교실 뒤켠에서 무슨 소리 들립니다.

석유장수 기름 따르는 소리 비슷합니다.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시며

누구여?

변소 가기 겁난 친구

일 보자고 대둣병에 집어넣은 것이 그만

통통해져 빠지지를 않습니다.

큰일입니다. 다가오신 선생님께

엉거주춤 알밤 두어 대 얻어터지니

그제서야 비로소 빠졌습니다.

 

- 석유장수 / 심호택

 

 

빙그레 미소 짓다가 이내 옛날 추억 속에 잠긴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그때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봐야 했다. 입시 경쟁이 지금보다 더했다. 중학교가 둘밖에 없던 작은 읍에도 학교가 성적으로 나누어졌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가는 A 중학교, 그리고 미달이 되기도 하는 B 중학교가 있었다. 똥통이라 불린 B 중학교는 장학금이 있어서 공부는 잘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가기도 했다. 국민학교는 A 중학교 진학 성적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다.

 

6학년이 되면 입시 준비를 하는 학원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교실 자리가 정해졌다. 당시는 중학교 진학률이 반도 안 되었으니 아예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은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운동장으로 쫓겨났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창회에 나가 그 시절 얘기를 하다 보면 그때의 차별에 서운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A 중학교에 하나라도 더 보내기 위해 담임 선생님은 특별 과외를 시켰다.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로 대여섯 명을 뽑았다. 우리는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와서 학교 숙직실이나 선생님 집에 모였다.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학부모가 교육에 관심이 클 리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제자를 하나라도 더 좋은 중학교에 보내고픈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는 실력 있는 교사라는 명성에 대한 욕심도 있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다.

 

밤에는 제집 변소도 무서운데 학교 변소를 가려니까 얼마나 겁이 났을까. 야간 학습을 하던 국민학교 6학년 교실, 준비한 대둣병에 오줌을 누다가 생긴 코믹한 상황을 이 시는 그리고 있다. 석유를 담는 큰 유리병을 '대둣병'이라고 한다. '댓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8L 소주병이었으나 석유를 담는 병으로 주로 썼다. 나도 이 대둣병을 들고 석유를 사러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큰 양은 주전자로 막걸리를 받으러 다닌 것도 같은 길이었다.

 

조심조심 볼일을 봤지만 선생님께 들켰다. 통통해져서 병에 낀 고추가 선생님 꿀밤에 오그라들어 쏙 빠졌다. 긴장한 분위기에서 유쾌한 웃음이 터진 한순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