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끼니 / 고영민

샌. 2017. 9. 30. 15:02

1

병실에 누운 채 곡기를 끊으신 아버지가

그날 아침엔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너무 반가워 나는 뛰어가

미음을 가져갔다

아버지는 아주 작은 소리로

그냥 밥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아버지는 밥을 드셨다

그리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2

우리는 원래와 달리 난폭해진다

때로는 치사해진다

하찮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겨울,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다가

한 노숙자가 자고 있던 동료를 흔들어 깨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먹어둬!

이게 마지막일지 모르잖아

 

- 끼니 / 고영민

 

얼마 전 모임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았다는 이가 여럿 있었다. 정신력이 강하면서 존경을 받던 분이었다고 다들 기억했다. 누추한 말년보다는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인생의 마무리로서는 훨씬 의미 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죽음 앞에서 아등바등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스콧 니어링도 생의 마지막이 그랬다. 언젠가는 죽음에 대해 초연해지게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도 도와주어야 한다.

 

한 끼니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그 엄숙함에는 차이가 없다. 경박하게 변해가는 게 두렵다. 그저께의 상황 때문에 이 시의 둘째 연이 가슴을 친다. 난폭해지고 비루해지는 건 밑천이 얇기 때문이다.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뒤통수라도 때려주고 싶다. 나는 과연 품위를 논할 자격이나 있는지, 한없이 자괴감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