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사과 한 알

샌. 2017. 10. 15. 08:04

해마다 주로 먹는 과일이 다르다. 어떤 해는 토마토, 어떤 해는 복숭아가 최고의 과일이 된다. 올해는 단연 사과다. 봄부터 습관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 한 알을 먹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입이 칼칼해서 냉장고에 든 사과를 꺼내 먹었는데 상큼하고 좋았다. 아침에 먹는 사과 한 알은 보약보다 낫다는 말도 생각났다. 그 뒤로 일어나면 자연스레 사과로 손이 가게 되었다. 머리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몸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

 

가을 들어서는 고향에서 계속 사과가 올라오고 있다. 벌레가 먹어 상품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이웃에서 거저 준 것이다. 썩은 데를 도려내면 성한 사과나 별반 차이가 없다. 사는 경우는 낱개로 포장되어 껍질째 먹는 사과를 고른다. 아무래도 정성을 들인 쪽이 훨씬 맛이 낫다.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조심스레 몇 등분으로 나눈다. 아직 아내가 일어나기 전이기 때문이다. 작은 사과는 네 등분, 큰 사과는 육 등분이다. 베어 물면 차고 신선한 사과의 풍미가 입안에 번진다. 곧 온몸이 반응하고 세포가 환호하며 깨어난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아침에 사과 한 조각이 주는 기쁨이 바로 행복이다. 매일 반복되지만 만족감이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아야 진짜 행복이다. 그것은 일상의 소소한 것만이 줄 수 있다.

 

우리는 착각한다. 행복을 크고 화려한 데서 찾는다. 물질의 만족은 더 많은 소유를 갈망할 뿐이다. 헐떡거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행복은 없다.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지나친지,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얼마나 무시하고 사는지, 작은 사과 한 알로 아침마다 깨닫는다. 오늘도, 고마워, 하면서 사과를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고나야 해  (0) 2017.10.30
자발적 고독  (0) 2017.10.23
기다려 주기  (0) 2017.09.29
무릎 꿇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0) 2017.09.09
인생을 향유하는 능력  (0) 2017.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