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이탈리아(1) - 아시시

샌. 2018. 3. 17. 23:24

 

2018년 3월 8일 오후 4시 40분에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낮 12시 4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까지 12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8시간의 시차가 난다. 아내와 함께 하는 7박 9일의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 밖에서 패키지여행 멤버들이 모였다. 총 27명인데 여자가 24명, 남자가 3명이다. 여자끼리 단체로 온 10명과 8명 그룹에 우리와 비슷한 나잇대의 부부, 그리고 자매와 모녀 팀, 혼자 온 남자가 한 명 있다. 여자들 틈새에서 어떻게 지낼까, 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첫날은 다른 일정 없이 로마 시내에 있는 호텔에 가서 쉬었다. 저녁으로는 김밥이 나왔다. 호텔로 가는 길에 만난 이탈리아의 첫인상은 회색빛으로 우중충했다. 사람들도 무뚝뚝해 보였다. 퇴근 시간이어선지 차량 정체가 심했다. 호텔 시설도 우리나라 여관 수준이었다. 파손된 문고리는 수선이 안 된 채 덜렁거렸다. 난방도 안 돼 내복을 입고 잤다. 로마 시내는 건물을 신축할 수 없어 대부분 기본 설비가 낡았다고 한다. 옆 방의 말소리 때문에 늦게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인 2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한국이라면 오전 10시니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 것이다. 더 이상 잠들 수 없었다.

 

3월 9일, 이탈리아 여행 둘째 날이다. 오전에는 오르비에토, 오후에는 아시시를 찾아간다. 로마에서 오르비에토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오르비에토(Orvieto)는 절벽 위에 있는 오래 된 마을이다. 마을 역사는 약 3천 년 정도 되었다. 여기서는 로마 이전에 살았던 에트루리아인들의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오르비에토는 슬로 시티로 지정되어 있다.

 

 

레일 위에서 움직이는 'Funicolare'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비에토에 올라간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걸어 오르면 더 좋을 것이다.

 

하나투어 깃발을 든 사람이 우리 팀 가이드다. 기본 지식이 탄탄하고 유머가 많은 데다 열정적인 분으로, 내가 만난 가이드 중 최고였다. 이탈리아에 성악 공부하러 왔다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패키지여행의 성패는 가이드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팀원의 부족한 점을 가이드가 말끔히 메워주었다.

 

"이태리니까!" 가이드가 얘기해 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사람 중심과 평등 정신, 그리고 복지 등은 우리가 이탈리아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다. 대신 우리가 보기에 느리고 답답한 점도 많다. '빨리빨리'나 편리,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불편했던 것이 화장실이었다. 특히 여자들의 고충이 컸을 것이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이것이다. "이태리니까!"

 

 

 

 

 

30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오르비에토 마을 골목길을 산책하다. 고풍스런 이곳은 눈에 닿는 곳 모두가 예쁘고 정겹다. 작은 돌로 포장이 된 바닥은 이탈리아 길의 특징이다.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이것저것 물건 구경도 하고 싶지만 여기는 이탈리아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조심스럽기만 하다.

 

 

 

골목길 옆에 작은 성당이 보이자 아내는 들어가 잠시 기도하다. 돔형 천정, 화려한 프레스코화는 이탈리아 모든 성당의 기본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랫 동네는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에서 제비꽃을 보니 더 반갑다. 이탈리아 기온은 우리나라보다 5도 정도 더 높다. 지금 같은 3월 초순이라면 우리나라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된다. 꽃이 피는 걸 보니 실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체감 기온은 다르다. 그늘 지고 바람이 불면 꽤 쌀쌀하다.

 

 

오르비에토의 명물인 오르비에토 성당이다. 오르비에토를 찾는 여행자 대부분이 이 성당을 보기 위해 올 것이다. 작은 마을에 이렇게 큰 성당을 세웠다는 게 놀랍다. 1290년에 세우기 시작해 1580년에 완성되었다니 거의 300년이 걸린 셈이다.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이라고 한다.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혼자 온 사람이다. 30대 중반의 회사원인데 어쩌다 패키지여행에 동참했다. 얼굴이 맑고 마음이 순수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DSLR로 사진 찍기를 즐겼다.

 

 

오리비에토 성당 내부다. 입구만 개방되어 있고, 더 안쪽은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시간이 없어 자세히 볼 여유가 없어 유감이다. 성당 안에는 유명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이 많다고 한다.

 

 

오르비에토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성당 앞에서 인증샷을 찍다. 이어폰으로는 가이드의 집합하라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는데 급하게 셔터를 누르느라 구도를 맞출 겨를이 없었다.

 

 

오후 관광은 아시시(Assisi)다. 오르비에토에서 아시시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아시시는 수바시오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BC 1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아시시는 로마로 병합된 뒤부터 번영하기 시작했다.

 

아시시가 유명해진 것은 1181년에 이곳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성인 때문이다. 성인은 청빈과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인의 모범을 보였다. 성인과 관련된 감동적인 일화가 많이 전한다. 스무 살때까지 방탕한 삶을 살다가 회심해서 '작은 예수'라 불린 그분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클라라와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도 들어 있다.

 

 

내 본명을 프란체스코로 정한 것도 성인의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은 때문이다. 직장의 책상 위에는 프란치스코 기도문이 적혀 있어 매일 몇 번씩이나 음송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는 바탕도 안 되면서 너무 가난을 소망했다.

 

세례를 받은 이후 성인의 탄생지인 아시시에는 꼭 가보고 싶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결정한 배경에도 아시시가 있다. 버스를 타고 멀리서 아시시가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차장에서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가는 마을은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나 있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풍경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건물이나 장식이 모두 예술이다.

 

 

 

1140년에 건축된 루피노 성당이다. 루피노는 아시시의 초대 주교이자 순교자로 아시시의 수호성인으로 존경 받고 있다. 이곳에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세례를 받았다. 단정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자유시간이 되면 끼리끼리 흩어지는데 우리는 부부 팀끼리 넷이 어울린다. 같은 가톨릭 신자이고 비슷한 나이여서 쉽게 가까워지고 있다. 저 부부가 없었다면 꽤 외로웠을 것 같다. 

 

 

 

아시시의 중심부에 코무네(Comune) 광장이 있다. 광장치고는 좀 좁다. 여기에 BC 1세기에 세워진 미네르바 신전 유적이 있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다. 여섯 개의 주름진 원형 기둥의 위용이 당당하다. 16세기부터는 이 신전을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골목 후미진 곳에 동상이 있어 찾아가 보니 프란치스코 성인이 태어난 집터에 세운 누오바 성당이다. 멀리서 볼 때는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인 줄 생각했는데 기대와 달리 프란치스코 부모의 동상이라 한다.

 

 

꽃 가게가 꽃보다 더 예쁘다.

 

골목에 있는 조그만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함께 마시다. 이탈리아에서는 아메리카노 대신 에스프레소를 자주 했다. 에스프레소는 진한 맛 뒤에 오는 여운이 매력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커피 한 잔이 1유로 정도로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싸다.

 

 

 

 

 

클라라에게 봉헌된 산타 키아라(Santa Chiara) 성당이다. 13세기에 세워진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미가 느껴진다. 클라라를 상징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내려다 보면 넓은 평원이 펼쳐지고, 바로 밑에는 올리브 과수원이 둘러싸고 있다. 맑고 따스한 봄날이다.

 

 

 

아시시의 서쪽 끝에 프란치스코 성당이 있다. 원래 이곳은 죄인들의 처형장이었다. 그래서 '죽음의 언덕'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1228년 이곳에 프란치스코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지면서 그 이름도 '천국의 언덕'으로 바뀌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여기에 모셔져 있다.

 

 

프란치스코 성당의 정문이다. 앞에서 봤던 루피노, 누오바, 산타 키아라 성당과 같은 양식이다. 순례객은 여기로 입장해서 밑으로 내려가며 성인의 정신을 되새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탄생 800주년이던 1982년에는 당시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전세계의 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이곳에서 평화 기도회를 열었다.

 

 

아래 뜰에서 본 성당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에 비추어 보면 너무 크고 화려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작고 소박한 성당이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위대한 성인을 기념하고픈 마음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가이드를 따라 마을과 성당을 둘러본 뒤 자유시간이 주어지다. 우리는 성당으로 다시 들어가 짧은 묵상을 하고 기념품도 샀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 아시시다. 아시시는 신심을 가진 개인이 주로 찾는 편이라 단체 관광객이 드물다. 유명 관광지처럼 북적대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저녁 무렵 이곳에서 프란치스코 성당 뒤로 지는 석양을 바라본다면 멋질 것 같다. 이젠 아시시를 마음에 담아 두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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