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샌. 2018. 3. 30. 18:48

제목만 보면 괴기물로 오해하기 쉬우나, 청소년의 청순한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췌장암에 걸려 1년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소녀와 동급생 남자 친구가 주인공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병에 걸린 같은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네 안에서 살고 싶다'는 표현이면서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남자 주인공(이름이 하루키였다. 이 영화에서는 이름이 잘 불리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은 그저 '친한 친구'라고 부른다.)의 캐릭터가 특이하다. 하루키는 교실에서 급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일종의 왕따 학생이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인 사쿠라는 동급생의 퀸카다. 자신의 병을 감추고 명랑하게 지낸다. 1년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어떤 우연한 인연으로 하루키가 사쿠라의 비밀을 알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당연히 사쿠라가 적극적이고, 하루키는 마지못해 따른다. 사쿠라는 질척대는 다른 남학생들보다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면서 홀로 굳건히 살아가는 하루키한테 매력을 느낀다.

둘은 자주 만나고 여행도 가면서 가까워진다. 하루키도 차차 마음을 연다. 둘의 사귐은 너무 순수해서 요사이 저런 아이들도 있나 싶다.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다. 솔직히 하루키를 보면서 내 십대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아마 저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루키처럼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책 보기만 즐겼다. 특히 여자관계에서는 숙맥이었다. 영화 속 하루키와 다른 점은 사쿠라 같이 접근해 오는 여학생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왕따에게 신경을 써 주는 퀸카는 없다.

사쿠라 저 세상으로 떠난 뒤 하루키는 모교의 교사가 되고 사쿠라와의 추억이 깃든 도서관의 책 정리 작업을 한다. 영화는 두 시점이 교대로 나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에게도 저처럼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아련하게 지켜보게 되는 영화다.

하루키가 책상 서랍 속에 항상 넣어두고 있는 사직서를 찢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사람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사쿠라가 생전에 당부한 말이기도 하다. 언젠가 하루키가 사쿠라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사쿠라는 이렇게 말한다."산다는 건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야.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되고, 싫어하게 되고,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손을 잡고, 안아주고, 엇갈리고, 그게 산다는 거야. 자기 혼자서는 살아있는지 알 수 없어." 불치병에 걸려서일까, 소녀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어른스럽다.

사쿠라 역을 맡은 배우를 찾아보니 이름이 하마베 미나미다. 2000년생이니 이제 열여덟 살, 맑고 청순한 이미지가 빛나 인상에 남는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간지러운 일본 영화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어쩌면 진부한 내용을 그런대로 잘 그려냈다. 각자의 청소년 시절을 추억하게 해 주는 감미로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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