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둔황의 사랑

샌. 2018. 4. 13. 12:44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다 읽지 못했는지 모른다. 내용이 어렵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 같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보고 옛날이 어슴푸레 떠올라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역시 명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둔황의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탐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알 것 같다.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주간 잡지의 기자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아간다. 단칸방에서 동거하는 여자가 있지만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현실은 누추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꿈꾸는 세상은 따로 있다. 서역의 사자를 찾고, 공후를 불었다는 노인을 만나려 한다. '천세불변(千世不變)'이라고 비단 조각에 적힌 '누란의 소녀' 미이라도 주인공의 관심을 끈다. 우리는 찰나의 존재들이다. 사랑이 영원으로 이어지길 희구하지만 하룻밤 꿈처럼 허망한 일인지 모른다.

 

이 소설을 읽으면 뭔가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언어로 명확히 잡아내기 힘들다. 끝없는 시공간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자의 발걸음, 모래에 새겨진 흔적은 이내 바람에 묻힌다. 역설적으로 소설에 그려진 하찮은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암시하고 있는 듯도 하다. 현실은 영원이 현현한 한 부분이므로, 영원과 연결되어 있다.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서역' '둔황' '누란' 같은 지명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비단길'이라는 이름 역시 그러하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도 그 길을 지나갔다. 그 길에는 천 개의 부처가 있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인간 갈망의 원형을 볼 수 있을까. <둔황의 사랑>은 오늘로, 내일로 영원히 이어져 갈 것이다. '둔황'은 나를 찾아가야 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의 길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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