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노욕은 추하다

샌. 2018. 4. 30. 11:57

인간이 제 몫을 챙기고 재산을 소유하게 된 건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수렵채취시대에는 모아둘 물량이 적었뿐더러 이동 생활에서 보관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탐욕도 농사와 함께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부터는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박질이 시작되었다.

 

사탕이 있으면 아이들도 다툰다. 그러나 아이들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다. 한두 개면 만족하지 수십 개의 사탕을 혼자 독점하려고는 안 한다.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다른 아이에게 나누어줄 줄 안다. 동물도 제가 배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사자가 수십 마리의 얼룩말을 사냥해서 제 창고에 보관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젊은이의 욕망도 현실적인 이득이 아닌 미래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젊은이의 야망은 오히려 권장된다. 요사이는 일찍 이재에 눈뜬 젊은이도 있지만, 젊은이의 야망은 대부분 고상한 이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젊은이가 아니다. 청년의 욕망에서는 푸릇푸릇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노년의 욕망만큼 추한 것은 없다. 특히 재물에 대한 욕심일 때 그렇다. 돈 싸움을 하는 것은 재벌가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돈만 얽히면 티격태격이다. 부모형제 사이에도 예외가 아니다. 심하면 우애가 끊어지기도 한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로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이다.

 

나무는 때를 안다. 언제 잎을 버려야 할지를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는 무성한 잎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땅으로 돌려준다. 인간도 나무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끝까지 움켜쥐는 게 제 생명을 단축하는 일이라는 걸 인간만 모른다. 가을 나이가 되어 열매를 맺었으면 집착을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노년의 미덕은 겸손과 절제다. 제 욕심만 차리다가는 인생이 추해진다. 욕(慾)이 욕(辱)이 된다. 최근 내 주변에서 한심한 사건이 있었다. 자기 성찰이 없다면 노년은 얼마나 불쌍한가.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잃다니,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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