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샌. 2021. 12. 7. 11:57

어린 손주를 보면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 아빠는 나를 위해 있고, 친구나 장난감도 마찬가지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걸 헤아릴 능력이 없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듯 동화 나라에서 살아간다. 어른 눈에는 그런 행동마저 마냥 귀엽게 보인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말을 배웠다. 배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구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배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꼭 신체만이겠는가. 인간의 정신도 인류 여명기의 미숙함에서 시작하여 차례대로 답습하며 성장해 나가는 건 아닐까.

 

5백 년 전까지도 인간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왔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를 거치며 사람들에게 지동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지구는 수많은 은하 중 하나의, 그나마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변두리에 있는 작은 별 주위를 도는 창백한 푸른 점이다. 우주의 중심에서 보잘것없는 변방의 공간으로 내팽개쳐진 것이다.

 

성숙한 어른이 되면 유아기의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난다. 사춘기를 겪고, 친구나 부모와 부딪히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래도 남아 있는 자의식은 완고하다. 인간은 모두 나르시시스트다. 반대로 너무 자존감이 약한 사람이 있지만 어떤 병리적 원인으로 자기애(自己愛)가 억눌러져 있을 뿐이다. 인간이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통해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지 모른다.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다가 죽은 뒤의 이야기를 코엘료는 이렇게 들려준다. 호수마저 나르시시스트였던 것이다.

 

"호수가 죽은 나르키소스를 애도하자, 요정들은 나르키소스가 그토록 아름다웠기에 호수가 슬퍼할 만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호수는 나르키소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슬퍼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집착도 자기애의 한 단면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부모의 '희생'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쓸쓸한 인생살이에서 자기애가 없다면 버텨내기 힘들다. 그러나 고단한 현실을 살아내는 힘의 기반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사람은 어른이 되면서 자신이 특별하지 않고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성숙하면서 겸손해진다. 그럼에도 "난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버팀목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누구도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땅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평가한다.

 

노년에 들어서서 나는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대다수는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어릴 때는 세상이 온통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늙어간다는 건 자기애의 방패막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노년의 쓸쓸함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의 진실은 언제나 쓸쓸한 법이니까.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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